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부까지 미국 역사를 한 책으로 집대성했다는 면에서 책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우리나라 역사학자 이이화의 <역사>와 닮은꼴이다. 이이화의 <역사>는 고조선부터 전두환ㆍ노태우 정부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책 한 권에 묶었다. 사실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엮는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 그런 책은 역사를 일목에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살아있는 미국역사>도 그런 책이다. 그러나 이이화의 <역사>와 이 책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시각이 다르다. 전자가 역사의 담담하게 기술한 정통역사서라면 후자는 대중의 시각에서 본 역사를 그렸다. 많은 역사서는 왕권 또는 정부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당시 정책이나 법 집행이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인디언ㆍ흑인ㆍ여성ㆍ소수 이민자의 눈에 비친 미국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 하워드 진이 진보적인 역사학자인 점도 이 책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 대중들의 눈에 비친 미국역사는 참으로 암울하다.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개척하면서 원주민인 인디언을 말살한 것부터 시작된다. 최근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중동국가들을 공격하는 이유의 속셈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처럼 이 책에 나타난 미국역사는 수면 아래 감춰진 또 다른 미국역사를 들춰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링컨의 경우이다.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까지 감수한 영웅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링컨은 일개 정치꾼에 불과하다. 흑인 노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노예폐지론자였던 신문기자 호러스 그릴리에게 보낸 링컨의 편지를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 분쟁에서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연방을 보존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대로 노예를 해방시켜야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사실 미국은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국가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많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나라이다.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백인과 흑인이 이용하는 식당을 구분되었을 정도이다. 현재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배럭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있다. 이 둘의 경선에서 거둔 성적은 차치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와 대선에서 경쟁할 경우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러 이유 중에 그가 흑인이라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21세기 미국은 아직도 유리처럼 보이지 않는 벽이 백인과 흑인 또 유색인종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미국역사의 내면 갈등을 이 책에 부어 놓았다. 이 갈등을 잘근잘근 씹어보면 이 책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표현은 필요 이상으로 무겁다. '역사=무게감'이라는 공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면 조금 부드럽고 쉽게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자칫 지루함 때문에 역사서를 기피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수면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