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다. 현재 인도의 명문 푸네대학 총장이며 인도의 미래 대통령감으로 꼽히고 있는 나렌드라 자다브. 그는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임에도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로 거듭났다. 불가촉천민 출신이 차기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이다. 그의 책 <신도 버린 사람들>이 유명세를 타는 이유이다. 옷깃도 닿으면 안 된다고 해서 붙여진 계급, 불가촉천민(untouchables). 그가 불가촉천민의 멍에를 어떻게 벗어던지고 가촉민이 되었는지 그 역경이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4분의 1은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부친과 모친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책 내용의 절반을 넘는다. 내용이 지루해질 즈음 주인공인 나렌드라 자다브의 이야기가 겨우 시작된다. 그러나 흥미를 느낄 새도 없이 마지막 장을 넘겨야 한다. 저자는 집안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또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촉천민의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불가촉천민의 삶을 생생하게 알려주고자 부모의 삶을 책 내용에 담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책 내용에서 부모의 삶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오히려 본문 후에 이어진 ‘에필로그’에 쓴 저자 자신의 부분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그럼에도 사실 저자의 삶에 대한 내용은 책 내용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부모의 의식이 깬 사람이라서 지금의 나렌드라 자다브와 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왔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또 그가 불가촉천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부모의 덕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은 부모보다 저자의 삶이 궁금하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의 궁금증과 갈증을 온전히 해소해주지 못했다. 다만 인도의 계급제도의 불평등과 불가촉천민의 삶을 생생하게 설명하는 데는 성공했다. 마치 꼼짝하지 않는 옐로우 캡 안에서 ‘말로만 듣던 뉴욕의 출근길 교통은 최악이군’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