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필이다. 아니 능변이다.' 이외수의 에세이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를 읽고 작가에 대한 일부 독자들의 생각이다. 작가는 첫 장에서 “여자, 은하계를 통틀어 가장 난해한 생명체다”라고 썼다.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 이야기를 하려는 투이다. 제목에도 ‘여자’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오니 더욱 그렇겠다 싶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사랑은 결국 온 생애를 바쳐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뿐이다”라고 썼다. ‘여자’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났다.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여자로 출발해서 사랑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경유지’를 만든다. 예컨대 이렇다. “소련의 정치가 흐루시초프의 말을 빌면, 정치가들은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다리를 놓은 다음에 국민들이 무용지물이라고 아우성을 치면 세금을 더 걷어서 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가들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평안을 빙자해서 국민들의 고충을 배가시키는 사람들이다.”(220p) “학교당국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라고 단정한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성적의 노예가 되기를 종용한다. 심청이의 사랑도 춘향이의 사랑도 성적을 올리기 위한 교재에 불과하다. 박목월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도 시험문제의 예문에 불과하고, 박재삼의 ‘마음도 한자리에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도 시험문제의 예문에 불과하다. (생략)”(72p) 작가는 불과 2백여페이지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짚었다. 사회적 문제점을 ‘이외수표 시각’에서 ‘이회수식 표현’으로 풀어냈다. 표현에 거침이 없다. 그냥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에서나 나옴직한 단어를 과감하게 나열했다. 이런 식이다. “성희롱이 증가하고 성폭력이 증가한다. 어떤 여자들은 팬티가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다니는 이유가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구상에 남자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도 여자들이 팬티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까. 그때도 거금을 들여 얼굴을 성형하는 열성을 보일까.”(19p) “사이비들은 가증스럽게도 자비라는 단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먹거리기는 하지만 정작 자비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들은 대부분 ‘베풀기’를 가르치는 일보다 ‘바치기’를 가르치는 일에 주력한다. 그들의 절대자인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앵벌이 두목으로 전락시키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65p) “외국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함부로 몸을 내던지는 혐한파 아가씨들. 논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장의 허리를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지만 그녀들은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외국인들의 허리를 끌어안고 모텔 침대에 몸을 던지는 것일까.”(124p) “그러나 아무리 군사력과 경제력이 막강한 국가라 하더라도 예술의 가치를 모르면 후진국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아직 후진국이다.”(135p) “대한민국은 예술과 가난이 자매결연을 체결한 나라 같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진짜 예술가들은 모두가 가난하다. 대한민국에서 시쓰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돈벌기를 포기했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오죽하면 자녀들이 예술을 지망하면 부모들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말리겠는가.”(161p) 한 페이지에 반 정도만 글을 썼다. 종이의 거의 반은 여백이다. 이렇다. “세상 전체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126p) 이 짧은 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있는 글의 전분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오히려 종이의 여백에 더 많은 생각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독자가 그 여백을 채우도록 할 요량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에세이에서는 향기가 난다. 두꺼운 종이로 만든 책갈피가 들어 있는데, 그 책갈피에서 꽃향기가 폴폴 난다. 책 읽는 동안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실제로 책 페이지마다 어려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의 커버를 덮을 즈음 되면 그 꽃들의 이름을 친절하게 달아 두었다. 이 에세이는 여자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에세이다. 작가는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여자, 학교, 정치, 사회, 문학을 들쑤셨다. 모든 것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더욱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책의 마지막 커버 안쪽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주의 본성은 사랑이다. 자연의 본성도 사랑이다. 그대의 본성도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