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리데기'는 전통설화 ‘바리공주’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시대는 현재이다. 북한 청진에서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바리. 아들을 원했던 부도에 의해 태어나자마자 숲 속에 버려진 바리를 풍산개 ‘흰둥이’가 다시 데려와 목숨을 건진다. 버린 아이라는 뜻의 바리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심하게 앓고 난 후 영혼(귀신), 동물, 벙어리 등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만 갔다. 어려운 현실에 바리 삼촌이 남조선으로 갔다는 소문이 돌면서 바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홀로 두만강을 건너 도착한 중국. 먹고 살기 위해 발 마사지 일을 배워 겨우 입에 풀칠하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팔려다닌다. 결국 영국 런던으로 팔려간 바리는 발 마사지 일로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삶과 죽음,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경험한다.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해서 나이를 낳지만 돌이 겨운 지난 아이는 사고로 죽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 911 사건과 영국 폭탄테러 사건 등도 바리의 인생과 엮인다. 저자 황석영은 탈북소녀 바리를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책 중간마다 죽은 할머니와 풍산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바리는 생과 사를 넘나들며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또 바리는 무슬림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인종과 종교 문제를 일깨운다. 또 전쟁과 자유를 절실하게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머리에 생생하게 남는 장면이 있다. 아프간 전쟁이 터지자 시동생이 전쟁에 참가한다. 생사가 분명치 않은 동생을 만나기 위해 바리의 남편도 전쟁터로 향한다. 그러나 남편은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남편 알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살아 돌아온다.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알리는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에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리듯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는 삼월 어느 날 리즈의 부모들에게 인도되었다. 알리는 며칠 전에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작은 배낭을 메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나는 역에서 기다리다가 플랫폼으로 몰려나오는 인파 속에서 키가 큰 알리의 우뚝 솟아오른 머리를 보고도 달려가지 않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알리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치는 순간에 나는 곁으로 가서 툭 치며 말을 건넸다. “당신, 왔어요?” 그는 나를 보고는 주춤 섰다가 나를 끌어안았고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참이나 그러고 서 있었다.“ (290p) 이 대목은 마치 영화 ‘애수(Waterloo Bridge, 1940)’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여주인공 비비안리가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애인 로버트 테일러가 살아 돌아온 장면이다. 한 기차역에서 몸을 팔며 연명하던 비비안리의 눈에 옛 애인 로버트 테일러가 들어온 것이다. 이후 바리는 죽은 첫 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갖는다. 그런데 그 아이의 생사가 분명치 않다. ”그날, 알리와 나는 아침에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캠든으로 가던 중이었다. 워털루 다리를 건너 사우스햄프턴 거리를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가던 차들이 멈추었고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갔다. 러셀스퀘어 쪽에서 불길과 연기가 올랐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쫓아가 보니 도로 한가운데서 버스가 폭파되었다. (중략) 내가 쓰러질 듯 알리에게 기대며 얼굴을 돌리자 그는 나에게 팔을 돌려 감싸고는 그곳을 떠났다. 경찰 차와 앰뷸런스의 경적 소리가 온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가야, 미안하다.” 나는 부른 배를 잡고 헐떡이며 걷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리와 나는 길을 메운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차들 사이를 걸어가며 뒤늦게 울기 시작했다.“ (292p) 이 책의 끝 부분이다. 영국 런던 폭탄테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바리의 모습이다. 임신 중인 바리가 복중 아이에게 ”아가야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아이가 폭발 소리에 죽은 것을 바리가 느낀 것인지, 아니면 아이는 이상 없지만 앞으로 닥칠 전쟁과 폭력 등 불운을 아이에게 물려줄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 말인지… 황석영 장편소설 ‘바리데기’를 읽고 왜 네티즌들이 노벨문학상 후보 대표 1순위로 네티즌들이 그를 지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가 공지영도 “타국에서 우리 말과 신화를 가지고 분투한 작가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북한 사투리, 현실과 맞물린 줄거리 등은 소설의 현실감을 살리는 소재로 적절했다. 바리가 범인과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것도 ‘바리공주’라는 전통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므로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그 설화처럼 바리가 생명수를 찾아 지옥까지 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독자의 시각에 따라서는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이는 독자들께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이 책은 전통 설화를 현실과 잘 ‘접합’시긴 작품 같다. 잘 못하면 누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자이크와 같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책은 모자이크와 같아 보인다. 각기 다른 사건이 바리라는 탈북소녀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로 엮인다. 따로 따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뭉친 작품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보이는 모자이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