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1920년대 일본.
섬나라인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 땅에 대규모 항구가 필요했다.
그 중에서 일본 쓰루가에서 함경도를 잇는 항로가 단거리였고 중국 대륙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좋았다.
일본은 1925년 함경도 청진, 웅기, 나주 세 곳의 후보자를 발표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항구가 될 이 세 후보지는 유치전으로 뜨거웠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청진. 이 도시는 당시 인구 4만명의 도시였다.
또 이미 도시기반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재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은 도시였다.
웅기는 강제 합병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군항으로 개발된 항구였다.
항만시설이 청진에 비해 새것이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청진과 마찬가지로 항만이 협소하고 물살이 세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청진에 비해 도시기반시설도 부족했다.
그러나 나주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럼에도 나주가 후보지로 결정된 것은 만철(만주철도)과 항만협회 기사들이 10여년 동안 함경북도 해안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천혜의 항구였다.
 
1925년 함경북도 청진 동일상회 경영자인 김기덕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10km를 달렸다.
나진을 시찰하기 위한 것이다.
나진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 두 곳을 사들였다.
나진이 청진과 웅기를 제치고 국제항구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김기덕는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었다.
나주가 최종 결정되자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는 김기덕을 조선 최고의 부자로 만들었다.
 
"수용 대상 부지 가격은 4달 동안 1000배 가까이 올랐고, 땅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종단항 발표 이전 지주의 태반은 이미 수십 배, 수백 배의 이익을 보고 토지를 매도했고, 큰손들도 대부분 이익을 실현해 빠져나간 상태였다. 수십 배, 수백 배의 가격을 주고 뒤늦게 투기 대열에 뛰어든 잔챙이 투기꾼들만 매입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토지를 수용당할 위기에 처했다." (39p)
 
1900년대 초반과 중반 시기 조선을 주름잡았던 투기꾼들과 부자들 이야기가 책 <럭키경성>에 담겨있다.
이 책은 10명의 부자들의 이야기를 당시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해 소개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 전봉관은 2005년 <황금광시대>와 2006년 <경성기담>이라는 책으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유독 1920~1930년대 조선시대의 이야기에 집착하고 있다.
<광금광시대>에서 그는 1930년대 우리나라의 골드러시를,
<경성기담>에서는 조선 초기 미스터리한 사건을 소개했다.
 
그가 최근 펴낸 <럭키경성>은 조선 초기 부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그 부자들이 돈을 모은 노하우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그도 이 부분을 명확히 했다.
 
"정작 부자들이 치부 비법이랄까 자산 운용 노하우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돈'과 '인간'이 어우러져 빚어낸 포복절도할 촌극과 훈훈한 미담을 담담하게 기술할 따름이다.
혹여 하루아침에 일확천금할 비책이라도 들어 있을 줄 알고 이 책을 펼친 독자가 계시다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329p)
 
그러나 이 책이 무미건조하지만은 않다.
부자들 이야기는 고금을 막론하고 세간의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생을 들여보고
그들의 노력을 엿보노라면 현재 자신의 형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는 일반인과 동떨어진 억대 부자들만의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로 실패만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93년 인생을 살면서 32번 사업을 벌여 32번 실패한 이종만이 바로 그이다.
그런 그가 자본가로는 유일하게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김일성 주석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칭송했기 때문이다.
이종만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이종만은 부를 누리기 위해 돈을 좇은 것이 아니라 부를 베풀기 위해 집요하게 돈을 좇았다.
그에게 돈은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종만은 자본가 신분임에도 '노동자의 나라'를 표방한 북한으로 자진 월북했다.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꿈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이종만의 실패는 29번째에서 그쳤을는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기 전 마음과 되고 난 이후의 마음이 똑 같은 사람은 드물다. 부자가 되고 나면 가난한 시절 품었던 꿈을 잊어버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종만은 부자가 되기 전이나 후나 늘 한결같았다. 이종만의 실패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79p)
 
부자들의 이야기는 곧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낸다.
당시 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또 돈을 둘러싼 의혹과 암투도 재미를 더한다.
조선 황실과 일본의 관계에서 돈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구미를 당기는 대목이다.
사실 현재의 제도와 환경으로 그 시대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도 있다.
더듬거리는 영어실력으로도 주미대사가 된 이하영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심부름꾼, 요리사였던 그가 미국인 의사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듯한 엉성한 영어실력이지만 당시는 조선에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시대였다.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엿볼 수 있는 책 <럭키경성>은 한여름밤 무더위를 잊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