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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평점 :
1999년 11월 1쇄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가 2007년 6월 6쇄 개정판을 냈다.
저자 한비야는 "당시 최고의 작가가 그린 그림인데 지금 보니 내용에 맞지 않게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 보였다. 부록 글씨도 너무 작고 본문 글씨도 좀더 시원하게 키우면 좋을 것 같고… "라며 개정판을 낸 배경을 설명했다.
내용도 7년이 지났으니 변경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여름 휴가로 어디가 좋을지, 힌트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한비야의 여행기는 한결같이 '불친절' 하다.
'숙박은 어디가 편안하고, 볼거리는 무엇이고, 음식은 어디가 잘하고… '
이런 '친절한' 여행소개는 아예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도 '불친절'을 아예 공표했다.
"여기서 꼭 해둘 말이 있다. 새로 나온 이 책이 인터넷 검색엔진처럼 친절하고 자세한 최신 여행 정보로 가득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친절한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 정보 책을 가지고 다니면 편하긴 하지만 끝나고 나면 시키는 대로 따라한 것 같아 허전하기도 하고, 뭔가 아주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여행의 묘미는 완벽한 지도 덕분에 매사가 계획대로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친 약도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생기는 뜻밖의 만남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92p)
완벽한 지도보다 거친 약도로 여행해야 진짜 여행이라는 논리다.
이 책의 불친절에 기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빨간 깃발 아래 줄줄이 이어가는 여행사 단체여행보다 좀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배낭여행을 즐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갔었다'는 증거사진을 찍기 바쁘다.
조금만 눈을 딴 곳으로 돌리면 아주 다른 풍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1999년 3월2일부터 4월26일까지 저자가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여행을 한 것은 이전 6년간의 세계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인지 이 책 내용의 중간 중간에는 세계여행지의 내용도 섞여있다.
비유를 하거나 도움말을 하기 위해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혼인 저자를 나무라며 결혼을 꼭하라는 이야기를 밤새도록 했다는 할머니부터
쓰레기를 여행지에 버리고 가는 40대 부부의 '싸가지 없는' 행동까지…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면면을 글로 그렸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저자의 성품 때문인데, 이는 '한비야의 난초론'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키워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의 난초인 것이다." (51p)
국토종단여행이라면 한 두 달 시간을 내야 할 것 같다.
시간도 시간이고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꼭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몇 달씩 벼르고 계획하지 않아도 어느 날 친구끼리 의기투합해서도 할 수 있는 것, 체력 좋은 이십대 젊은이가 아니라 육십대 할머니들도 할 수 있는 것. 나처럼 혼자 해도 좋고 두세 명이 해도 좋고 가족끼리 해도 좋은 것. 한 달 이상 한꺼번에 시간을 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는 사람은 두세 번에 나눠서도 할 수 있는 것. 1년을 잡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도보여행이다. 너무나 힘들어서 가끔씩 나무 밑에서 '구구단을 외자'며 기를 쓰고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체력에 맞는 일정으로 재미삼아 즐기며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도보 국토종단이다." (118p)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걷기만 했다.
아파도 탈것을 타지 않았다.
여행도중 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온 뒤에는 늘 걷기를 멈춘 곳부터 다시 시작했다.
저자는 책에서 걷기를 강조한다.
"<동의보감>에도 이렇게 써 있다. '약보(藥補)보다는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 즉 약이나 보양식으로 몸을 보하는 것보다 걷는 게 낫다고." (120p)
이 책은 단순히 국토 종단기가 아니다.
한 걸음씩 꿈을 향해 꾸준히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불친절한' 책이 좋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