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석

 최근 생긴 변화 중 하나, 우리 반 책벌레와 친해졌다는 것. 축구는 드럽게 못하고, 허구헌 날 도서관에만 박혀 있던 녀석이라 2년 째 같은 반이지만 별 교류가 없었는데, 반에서 몇 안되는 비회귀자라는 공통점을 계기로 급격하게 친분이 상승했다. 확실히 책벌레는 책을 많이 보는 녀석이라 그런가, 상황 파악도 빠르고 이런 저런 분석을 잘한다. 지금 느끼는 답답함을 좀 해소하고 싶어 녀석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니 경우의 수부터 따져 보잔다.


"자 일단 회귀 조건을 보면 비회귀자는 둘 중에 하나야, 현재 몸이 다 안컸거나, 17년 후에는 죽고 없거나. 너 작년에 비해 얼마 안 컸지? 솔직히 우리 나이면 키는 다 컸다고 봐야 돼. 아재들이 남자는 군대가서도 크니 뭐니 하는데, 그건 그냥 운동하면서 척추 굽은거랑 거북목 펴지니까 그런거고.

고로, 니랑 나는 17년 후에는 죽고 없다 이거지.

 그럼 이제 왜 죽는지 사인을 찾아보자. 일단 우리가 고2고 17년 후에는 35살이니까 자연사는 말이 안되고, 병사도 아닐 확률이 높아. 왜냐, 병사였으면 지금쯤 이미 병원 끌려가서 내시경이나 CT 찍고 있어야 하거든. 나만 하더라도 그 날에 아침부터 병원 끌려가서 피 뽑히고 별의 별 검사를 다하느라 학교도 못왔었고. 요즘 미래에 생길 질병 미리부터 예방한답시고 병원 미어 터진다더라."


"너 병으로 죽냐?"


"엉, 31살에 암으로 죽는다더라.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다음 사고사, 이것도 아닐거야 아마. 너네 부모님이 미래 얘기 꺼내면 입 꾹 다문다고 했지? 근데 사고사면 말씀을 안해주실 이유가 없거든. 그냥 너 언제 무슨 사고나서 죽으니 조심하자고 말하면 되는거니까.

 이제 남은 건 자살 아니면 타살인데, 어느쪽이건 네가 순수한 피해자는 아닐거야, 심할 경우 가해자쪽이거나 빼도박도 못할 범죄자가 되는 걸 수도 있고.

 자, 그럼 이제 말해 봐봐, 너 뭐 사고칠 생각이냐?"


"사고를 '나는 사고를 칠 것이다'하고 계획하고 치는 인간도 있냐, 논리적인 멍청아."


 녀석의 분석을 가장한 악담을 듣던 도중 반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건다.

"너네 무슨 얘기해? 비회귀자 어쩌고 얘기 들리던데 같은 비회귀자인 나도 좀 끼워주라."


뭐라고...?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은 방금 분명 자기가 '비회귀자'라고 말했는데, 내가 회귀의 날에 봤던 반장의 말투와 태도는 절대 '이틀만에 만난 데면데면한 반 친구'를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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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도입부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이 뒤에 '나'는 그 날 아침부터 이상한 일을 너무 겪어서 내가 착각을 한건지, 아니면 반장이 정말 이상한 건지 헷갈리고.

반장이 이상한거라는 확신을 얻어도 그 날 그 시간에 반장을 만난 비회귀자는 나 혼자뿐이라서 주변 애들은 내 말 안믿어 주니까 어떻게 증명할 지 고민하고.

부모님이 아는 내 죽음은 어떤 것이며, 반장은 고2 이후로 나와 어떤 관계가 되고 내 죽음과는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데, 여기서 책벌레는 죽는거지.

그 다음 책벌레는 왜 죽었는가? 경찰은 사고사라고 단정짓고 사건 종결 시켜 버리는데 내가 보기엔 절대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사건 같은거지. 이제 여기서 범인은 누구이며, 나는 그걸 어떻게 증명해낼 것인지에 관한 글을 쓰면 재밌지 않을까 싶은데 필력이 딸려서 못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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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악

 미친 소리가 들려온 지 일주일 후, 세상은 시끄러운 동시에 고요했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침착했다. 그 동안 수 많은 증언을 통해 이 집단 회귀 현상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 전 지구의 시간이 17년 전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

두 번째, 17년 후의 시점에 '정신적으로' 살아있던 사람만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 이건 어떤 식물인간은 회귀했는데, 뇌사자는 회귀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증명되었다.

세 번째, 너무 어린 아이들은 회귀하지 않았다는 것. 현재까지 밝혀진 최연소 회귀자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여자아이로, 자신은 또래보다 성장이 일찍 끝나 현재의 체격이 성인이 된 이후의 체격과 큰 차이가 없어서 회귀한 것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

즉, 청소년부터 중년 그리고 소수의 장수하는 노인들은 17년 어치의 미래 정보를 알고 있지만, 17년 이내에 어떤 이유로건 죽는 젊은 사람, 남은 수명이 17년이 안되는 노인, 그리고 아직 다 크지 않은 어린아이는 그냥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4. 적응

 이 광란의 일주일을 겪으며 내 인간관계도 많이 변했다. 우선은 부모님. 뉴스에 나오는 저 헛소리가 진짜인거냐, 그럼 두 분 다 회귀를 하신거냐는 내 물음에 부모님께서는 그렇다고 긍정하시면서도 그럼 나는 어떻게 된거냐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나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더 캐묻기는 왠지 모르게 무서워 일단은 덮어놓고 지내기로 했다. 어머니 밥이 묘하게 맛있어진 것 같으니 좋은 점이 없는 것만은 아니라면서 스스로를 위안하며.


 학교에서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 날(티브이에서는 새로운 기원이니 1년 1월 1일이라고 새로 붙여야 한다는 둥, 온갖 이상한 외국어로 된 단어를 붙이고 바꾸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냥 다 '그 날'이라고 부른다.) 학교에 안 나온 이후로 쭉 안나오는 친구 녀석, 내가 말을 걸면 어색한 티를 팍팍내며 아저씨같이 대답하는 녀석,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묘하게 나를 편하게 대하는 녀석 등등 한 둘이 변한게 아니다보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 지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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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몇 년간 '회빙환'이라고 불리는 장르물이 정말이지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더라. 회빙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학을 떼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아직은 그래도 작가 필력이 괜찮으면 읽어는 보는편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든 의문점 하나, 회귀*빙의*환생을 하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단 한 명이거나, 극이 전개되면서 소수의 인물이 추가되거나 하는게 끝이다. 꼭 회빙환한 인물은 소수여야만 하나?

만약 '나'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이 모두 회귀를 했다면 어떻게 될까?



#1.등교

 아침에 일어나 여느 날과 같이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주인공 '나'. 그런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바라본 부모님이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엉뚱한 방문을 여시질 않나, 말투도 묘하게 어제와 다르다.

 일단 학교는 가야하니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는데, 길에서 마주친 웬 미친놈이 실실 웃으며 자기는 선택받았다느니, 이제부터 모든 것을 바꾸겠다느니 이상한 헛소리를 지껄인다.

 학교에 왔더니 매일 아침 일등으로 와서 항상 교실 문을 열어놓던 친구놈이 오늘은 보이지가 않는다. 일단 가방은 벗어놓고 친구들이 하나 둘 오는 것을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결석한 애들이 말도 안되게 많은 건 둘째 치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피씨방에서 주말을 불살랐던 다른 친구가 아침에 본 부모님이랑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지금껏 대화해본 적이 손에 꼽는 반장은 갑자기 친근하게 말을 건다. 다들 왜 이러는거야?



#2. 하교

 종례 시간에 들어온 담임 선생이 오늘은 야자 없으니 그냥 집에 가란다. 이게 웬 횡재야, 싶었는데 너네 오늘은 다른데로 새지 말고 집으로 곧장 가는게 좋을 거라는 경고가 붙는다. 평소같으면 그냥 씹었을텐데 오늘은 담임도 평소와 분위기가 달라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웬일인지 아버지께서도 빨리 퇴근하셔서 오랜만에 가족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적막함을 메꾸려고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내가 미친건지 나 빼고 다 미친건지 의심하게 할 만한 헛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회귀를 했단다.

뭐라고?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일로 추정되며, 회귀자가 비회귀자보다 많을 거란다.

뭐라고?

사실은 아나운서 본인도 과거로 돌아온 거라고 한다.

저 새끼는 술 먹고 방송을 하나? 내일이면 저 아나운서는 짤리고 다른 사람이 오겠군-하고 생각하며 다시 밥에 집중하려는데,나를 빤히 쳐다보던 어머니께서 묻는다.

"너.... 돌아온 게 아닌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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