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가는 재미있는 에세이를 쓴다


 소설가들의 여행에세이는 늘 읽을 맛이 난다. 여행이라는 것은 대개 누군가의 경험이나 감상으로 귀결되기 마련인데 그 감흥이란 당사자에게나 스팩타클한 것이요, 눈물 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래서 수 많은 여행 에세이 작가들이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 산 중턱에서 먹었던 소바가 한국의 어느 고급 일식집에서 먹는 요리에 비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한 듯 공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소설가들은 해낸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어떤 느낌으로 좋게 생각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감동받았던 나무, 산, 사람들의 생김새와 자태를 '묘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얼마나 감동받았는 지 쓰지 말고, 나를 감동하게 한 장면을 묘사해 보라고.  장유정은 자신이 걷는 히말라야의 모든 길목 어귀들을 그런 식으로 더듬어 갔다. 어떤 접속사도 생략하고 아주 스피디 하게. 



고수의 여행에세이보다 여행 초심자의 에세이가 늘 재밌다


 정유정은 여행의 고수가 아닌데도 에세이를 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로 그 지점이 그녀의 글을 재밌게 한다. 정유정이 여행 초심자여서 혼자 가는 여행길을 두려워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스레 꼭 여행을 가야할 것만 같은 투지에 불 타고, 못 먹는 현지 향신료에 배변 활동을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 보다는 용감하지만 꼭 우리 처럼 실수 하는 동네 언니 같다.


 대개 많은 여행 에세이에서 '여행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은 너무 프로 같아 범접하기 어렵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조금 꼰대 같아 진다. 현지인처럼 놀지 못하면 인생을 제대로 못 즐기는 사람, 비포 선라이즈 마냥 하루의 일탈 좀 해봐야 제대로 된 추억을 만드는 사람, 생의 깊은 깨우침과 가르침을 해외 골목 어귀 어귀 마다 길러내는 사람. 우리가 궁금한 방황이 꼭 그렇지는 않을 때도 있다.



소설가는 모든 것에 다 산 사람 같을 줄 알았는데 


 소설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같다. 사건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의 사연을 읽어주는 사람들 같다. 신문 헤드라인의 '범죄자를 은닉한 남자'의 괘씸한 팩트를 한명의 인생과 또 다른 이의 인생이 만나 얽히고 설키는 트라우마와 용서의 여정으로 풀어낼 수 있다. 소설가라면 그래서 정말 많은 사회적, 대인 관계적 경험을 가진 이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들의 예민한 감각이 다층적인 인생으로 우리보다 농 익게 진화했으리라 - 


 그래서 정유정이 네팔 식 볶음밥을 거부할 때, 사교적인 해외 여행자들과 선뜻 현지식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쭈뼛거릴 때 나는 웃음이 난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늘 뜨거운 일이지만 여전히 그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헤집고 다니는 일이란- 오랜 숙제이고 호기심어리고 서툰 일이구나.


  

옳은 여행 에세이란,


 능숙할 것 같은 사람이 능숙하게 여행한 이야기는 멋지지만 재밌지는 않다. 능숙할 것 같은 사람이 서툴게 여행한 이야기는 초보적이지만 흥미진진하다. 더구나 순간 순간의 여정의 어려움과 눈에 보이는 광경들을, 누구보다 세밀하고 경쾌하게 묘사해줄 소설가로부터의 여행이란 믿고 보아도 되는 글일 것이다. 



 출퇴근 길이 즐거웠던 환상방황, 모든 고수들의 서툰 환상방황을 응원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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