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창암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김구는 21세에 국모를 죽인 왜놈들에게 복수를 한다고 작정하고 일본인 쓰치다를 죽인다. 그 후 경찰들에게 잡혀가기를 집에서 기다리다 3개월후 잡혀간후 감옥에서 나올길이 궁해지자 탈옥을 하게 된다. 일본인을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있었지만 탈옥수라는 타이틀 때문에 이름을 김구로 바꾸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독립운동가들과 생활하게 된다.

내용은 대략 이 정도에서 마치도록 하고 중요한 점 몇가지만 요약해서 말하자면 상해 임시정부 당시 가장 필요했던 것은 사람이였지만 재정적인 충족이 없고서는 절대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 재정적 충족은 미국, 멕시코, 하와이, 쿠바등에 사는 한인 교포들로부터 나왔는데 “세계 2차 대전 패망국 일본”이라는 이유로 해방되지 않고 만약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에 의한 해방을 맞았다면 많은 면에서 상황이 달리 전개되었을 것이고 해외동포에 대한 국민의식도 틀려졌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이승만 박사에 대한 업적이 소개되는데 분명 김구보다는 학식이 있고 대외 관리능력이 있어 보였다. 김구가 임정(임시정부) 주석으로 있을때는 중국관리들이나 미국 인사들이 찾아 오지 않았으나 이승만이 임정 주요인사였을 때는 외국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외국인사들의 관계가 원만해지면 당연히 조국의 이야기는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정치적인 면에서나 외교적인면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수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김구의 독립운동은 그가 노력했기에 이루어졌으며 현대의 정주영이 노력과 피땀으로 돈벌겠다고 나섰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학식으로 부족한 점과 세계정세를 포괄적으로 보는 통찰력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등의 부족은 그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가다의 잔뼈로 인한 지혜와 상황 대처능력은 뛰어났으나 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해낼 만한 능력에 대해선 의문이며 또 한가지 신기한 점은 3.1운동 당시 동네 사람들이 김구를 앞세워 만세 운동을 하자 하였으나 김구는 “그러한 만세운동과 같은 선동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 난 참여하지 않겠다” 라고 한 점이 예상외 였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선동이나 데모같이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론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를 부각시킬수는 있다(하지만 부작용을 항상 생각하구 행동해야한다). 그래도 국민적인 최초의 독립운동을 그런식으로 받아들인 것은?? 어쨌든 나라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위인대접을 받으니 보통인물은 아니다.

마지막 회고록에서 한 나라의 문화를 중요시 한점은 괄목할 만하다. 중국인의 담대함을 상해 임시정부시절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한.미 합병 특별훈련을 통해 또 다시 배운 것은 그가 깨닳은 많은 교훈중에도 가장 중요한 교훈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항상 낮은 위치에서 주위사람을 먼저 공경하고 위했고(그래서 가족들은 불행?했지만) 그러한 역사를 붓으로 종이에 옮겨적은 위업을 달성했기에 후세에 이름을 남길수 있었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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