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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보통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힘든 경험일수록 굳이 꺼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말하지 않고 넘긴 기억이 사라지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계속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슬픈 호랑이》는 이런 경험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네주 시노는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는데, 단순한 회고라기보다는 소설과 에세이가 섞인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되기보다는 기억을 따라가듯 이어지기 때문에, 읽는 방식도 일반적인 서사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하게 나누기보다는, 기억이 어떻게 남는지, 왜 어떤 장면은 흐릿해지고 어떤 부분은 반복되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집니다. 중간에 다른 문학 작품들이 함께 등장하는데,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보통 피해 상황에서 가해자보다 방관자에게 더 심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 상황에서도 직접 괴롭히는 가해자만큼이나, 옆에서 그 상황을 알고도 말리지 않거나 외면한 주변 인물들에게 더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도 폭력적인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방관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이를 감정적으로 단정하기보다 담담하게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글은 보통 감정이 강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는 태도가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차분하게 따라가게 되고, 읽고 난 뒤에도 생각이 오래 남는 느낌이 이어집니다.
읽고 나서 가장 남았던 점은 ‘말하는 것’ 자체가 단순한 고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경험을 다시 꺼내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일 수 있고, 그 방식이 꼭 하나로 정리될 필요는 없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슬픈 호랑이》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기억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한 이야기 전달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읽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