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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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대문자 뱀》은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자인 피에르 르메르트의 미공개 초기작인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파리에서 한 부유한 인물이 살해되는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전개 방식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건을 쫓기보다는 범인 쪽에 더 가까이 붙어 따라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 노년의 여성 킬러라는 설정이 눈에 띄는데, 겉으로는 전혀 의심받지 않을 인물이라는 점에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설정까지 겹치면서 이야기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건, 이 소설이 사건 자체보다 인물의 상태를 더 오래 들여다본다는 점이었습니다. 마틸드는 오랫동안 킬러로 살아온 인물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판단이나 기억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은 계획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경계가 흐려지는 부분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읽는 입장에서도 안정감보다는 불안한 느낌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이야기가 쉽게 ‘이건 옳다,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폭력이 반복되는데도 그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기도 하고, 사건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지나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신 중간중간 블랙 유머 같은 요소가 섞이면서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가라앉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편하게 읽히는 것도 아니라서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대문자 뱀》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으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대신 익숙한 구조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인물 중심으로 흐르는 스릴러를 찾고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초기작이 궁금했던 분들에게도 한 번쯤 추천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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