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단자의 상속녀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단자의 상속녀>는 12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이단’이라는 낙인이 사람을 어떻게 몰락시키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작품으로 캐드펠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정의감과 종교 권력의 충돌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죽은 주인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수도원을 찾으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곧 살인 사건과 이단 재판으로 이어지며 사건의 중심은 점차 한 권의 고서로 옮겨집니다. 중세 수도원의 폐쇄성과 교리 중심 사회에서 ‘말’이 어떻게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지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데 필요한 용기와 사유의 힘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레이브라는 인물이 죽은 주인의 유해와 유품을 들고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펼쳐집니다. 그는 단지 유언을 전하려 했을 뿐이지만 곧 ‘이단 사상’ 혐의로 고발당하고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몰립니다. 그를 고발한 인물은 이튿날 살해된 채 발견되고 수도원 내부는 혼란에 빠집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신앙 공동체처럼 보이는 수도원이 사실은 치열한 논쟁과 질시가 뒤섞인 공간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단과 정통, 진실과 오해, 믿음과 권력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공간에서 캐드펠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이름으로 생각을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야기 안에는 철학적 질문과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고서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 그로 인해 왜곡되는 진실,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만들어내는 폭력성까지 다양하게 다뤄집니다.
<이단자의 상속녀>는 사건 해결 그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 말과 침묵, 믿음과 판단의 과정을 섬세하게 비춥니다. 캐드펠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단죄보다 용서, 이론보다 경험, 권위보다 인간을 더 우선시합니다. 이는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사람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캐드펠 수사 시리즈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와 추리, 철학이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은 역사추리소설의 깊이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