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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평점 :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니,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책에 너무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제목은 아닐까?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책을 다 본 뒤에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는 제목을 다시 보면, 더없이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은 일대로 하지만 돈은 제대로 못 받고, 그냥 임금을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서 잔뜩 떼먹혀서 돈을 변변히 못 버는 상황.
심지어 처음 일을 시킨 쪽에서는 중간과정의 수수료 등을 생각하지 않고 처음 준 돈만 생각해서, 본인은 돈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중간에서 일을 시키는 쪽과 일을 하려는 쪽을 연결하고 '중개'하는 것만으로,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많은 돈을 가져가는 측이 도중에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데 말이다. 당하는 입장에서 지옥도라는 표현이 절대 과하지 않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이야기하는 중간착취 시스템은 악랄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중간시스템 쪽에서 사실상 그 고용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사람이나 일감을 구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틀어막은 길에서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양쪽을 연결하기만 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엄청난 돈을 가져간다. 마치 프랑스 혁명 직전 프랑스 왕국에서 세금을 걷는 자리, 일명 징세 청부인 시스템이 떠오른다. 마치 선불처럼 지역별로 미리 정해진 금액을 내면, 그 지역에서 세금을 걷을 권리를 나라에서 인정하는 제도.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정해진 금액만 국고에 들어왔지만, 징세 청부인들은 세금 명목으로 돈을 많이 걷을수록 차액을 챙길 수 있는 입장에서 자기 몫이 더욱 많아지니 갈수록 악랄하게 세금을 걷었다. 결과적으로 평민은 많은 세금을 뜯기고, 징세 청부인만 배불리느라 막상 왕국의 국고에는 돈이 적었던 상황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중간착취 시스템이 악랄한 점은, 비단 중개료나 수수료 명목으로 많은 돈을 뜯긴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책임은 있는데 보장되고 안정된 권리는 없는 상황이 되어서, 그야말로 언제 잘릴지 모르면서도 무슨 일이 나면 혼자서 뒤집어써야 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무슨 문제가 생기면 중개업체 등의 명목으로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서로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미루기만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덩그러니 내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특히 IT와 인터넷 기술의 발달이 개인 일자리 측면에서 얼마나 큰 타격이 되었고, 일명 중개업의 비중과 영향력을 극적으로 높였는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더없이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해서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욱 많은 것을 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은 개인 입장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게 되자, 일자리를 찾는 개인의 경쟁자가 단번에 확 늘어나버린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오가게 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건 고용주 측과 중개소 측에서는 알 바 아니다. 차비와 이동시간을 지출해서라도 일자리를 얻고 싶은 절박한 사람들이 자기 돈과 시간을 쓰면서 찾아올 텐데, 무슨 대수겠는가? 그렇게 추가로 소모되는 시간과 돈 등의 자원은 자기 몫에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경쟁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그 핑계로 지불해야 할 돈을 깎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사례를 보면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상승률이 낮아서 실질적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사례는 수두룩하고, 심지어 월급이나 고용비용 등에서 절대적인 금액 자체가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수익은 수익대로 뜯기면서 오히려 고용상태가 더욱 불안해지는 기형적인 중간착취 시스템에 대해 경악할수록, 이런 시스템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만큼 기막히게 느껴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이 단체 등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프리랜서처럼 개개인으로 파편화된 입장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런 걸 굳이 관심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서 이토록 망각되고 간과되었다는 것 또한 이 책은 날카롭게 보여준다. 특히 직계약 직고용 시대에는 나름대로 안정되고 소득도 높았던 직종이, 중개 시스템이 자리잡고 직계약 직고용이 사라진 뒤에는 불안정하고 실질 소득이 추락하는 위태로운 비정규직 신세가 된 사례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개인이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정녕 그대로 당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첫걸음은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파악하는 것일 것이고, 이 책은 바로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몰랐던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알면 알수록 찜찜하고 기분이 나빠지며 당장 나와 상관없을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상태로 없는 셈 치며 눈을 돌리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은 상세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그저 분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며 허점을 보완하는 길로 같이 나아가자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