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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ㅣ 민음의 시 337
김이듬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김이듬 시인의 시집인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는 언뜻 보면 꽤 담담한 분위기 같지만, 그렇게 담담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그토록 담담한 모습을 보이는 시들을 한 편씩 만나게 되면서 이 시집만의 독특한 인상과 시상 속에 푹 빠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 속의 이야기는 화재로 집이라는 공간이 통째로 사라지고 집을 잃어버리게 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담담하고 차분한 것인지 넋을 잃어서 오히려 무감정해 보일 정도로 차분해 보이는 것인지 모호한 분위기가 조금씩 나타나는 듯하다가, 어느새 그 처지에 놓인 입장 자체에 조금씩 공감하고 와닿고 동조하게 될 것 같은 시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시집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시집의 제목을 빌려서 묘사한다면, 아무에게라도 원망이라도 하고픈 심정일 때, 누구도 미워하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 마침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라도 원망이라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잠시라도 속편해질 것 같은 심정을 속속들이 토로하고 내보이다가도,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공연히 원망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뎌내고 보내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대목이 특히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