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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1 : 역사의 트라우마) - 전3권 -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 + 노랑무늬영원,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한강을 읽는 한 해 1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4년 5월
평점 :
이 세트는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역사의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지닌 책 세 권을 묶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노랑무늬영원 세 작품은 각각 한국 현대사 등에서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설로, 그 비극적인 사건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소시민 그 자체이던 사람들의 상황이 얼마나 무력하면서도 비극적으로 치닫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차근차근 묘사하듯이 그려나갑니다. 감정적인 표현은 일부러 최대한 절제한 듯한 문체와 분위기로 묘사되지만, 무감정하거나 건조하기는 느낌은커녕 마치 때로는 보고서라도 방불케 할 정도로 감정을 억누른 듯한 그런 느낌이 더욱 강렬한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 소설 모두 그저 비극적인 사건에서 그 사건 자체가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끝난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사건 본편 못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처절하면서도 서글픈 비극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비극에 대해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 비극이 조명되면 처벌받거나 비난받을 입장이어서, 혹은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엄연히 일어났던 사건을 외면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아예 거짓말이나 왜곡된 소문을 앞장서서 퍼뜨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비극을 겪었고 비극 뒤에 남겨진 사람에게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상처와 아픔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와닿고 공감하며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나 최소한 덜 불행해졌을까. 그리고 한강 작가의 그 세 권의 책들 속의 사람들에게는 저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현실도피 내지 비현실적인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의 상황에서, 그 처절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계속 살아가야만 할 때의 모습이 하나씩 그려집니다.
이 세 권의 책 중 한 권만이라도 온전히 픽션이었다면, 그 책 속에서 묘사된 사건이 모두 개인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남은 사람들은 비극을 겪은 생존자로서 배려받기는커녕 철저하게 잊혀지거나 차라리 잊히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의 상황과 직면하고는 해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모든 감정은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마음 깊이 와닿고 차츰 쌓이게 되고, 종국에는 그 마음 깊은 곳에서 마치 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무력하고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는 상황, 사건이 끝난 뒤에도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질 때 생존자이자 살아남은 사람이자 희생자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심정이 되고, 살아남는 것조차 얼마나 처절하게 느껴지는지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세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 속에서 묘사된 비극적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비극적인 피해자가 없었다면, 짓밟히듯이 죽은 희생자도 없고 그희생자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서 후속편처럼 계속 외면당하거나 또 짓밟히는 사람들도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책 속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 이름에 걸맞게 트라우마 그 자체로 남을 일을 겪은 희생자가 나오고야 말았으며,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침묵하고 모두 묻어버리거나, 심지어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을 모독하고 살아남은 사람을 조직적으로 비웃는 움직임조차 오랫동안 있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한강 작가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펼쳐내면서, 치밀하게 하나씩 살펴보는 듯한 문장으로 그 모든 것을 묘사합니다. 소설로 지켜보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말입니다.
한강의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묘사나 문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마치 평범한 어느 날 찬찬히 일기 같은 일상적인 글을 쓸 때나 어울릴 법한 문장이 오히려 더 자주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와 문장을 주로 썼기에, 그런 평범함이 더 어울리며 그런 평범한 단어로 생각하고 말하며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 비극에 휘말려 희생되는 이야기가 더 처절하게 와닿게 됩니다. 차라리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엄연히 실제로 일어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비극이 계속되는 모습까지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며 무엇보다 왜곡하지 말고 실제로 일어난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며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