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투 파라다이스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투 파라다이스 1권의 구성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중편 두 편이 실려 있는 모음집 같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주인공이 다른 두 편의 이야기가 단순히 같이 묶여 있는 것 이상의 깊은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워싱턴 스퀘어와 그 다음 이야기인 리포-와오-네헬레는 언뜻 보면 각각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두 이야기의 주인공을 고통스럽고 고뇌하며 비극적으로 만드는 원인은 다름아닌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그 사회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설정상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전염병 펜데믹 이후 디스토피아에 가깝게 변화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비극이지만, 펜데믹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책 속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는 얼토당토않은 어두운 요소를 다짜고짜 도입한 사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할지언정 막연하게 속시원하고 통쾌하게 여겼을 요소를 극대화시킨 사회에 훨씬 가깝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투 파라다이스 1권의 두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는 설정상 21세기 후반이 등장하는 미래라는 배경에는 어색할 정도로 고전적이고 옛스러운 옛날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과거 이야기가 꽤 비중 높게 등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번째 이야기는 유럽에는 신분제 의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 미국에서 집필된 고전 소설을 기본 뼈대로 삼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아예 미국에 합병되면서 멸망한 옛 하와이 왕국 왕실의 후손이 주인공입니다. 아무래도 최첨단 기술 및 장치가 넘쳐나는 미래 세계, 과거의 유산을 단절한 디스토피아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막상 이 작품 속에서, 부유한 집안의 상속녀의 유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옛 고전소설과 망한 왕실의 후손이라는 것을 기본 전개 얼개로 삼은 두 이야기는 디스토피아 미래 모습과 독특한 인상을 남기면서 서로 맞물리며 이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투 파라다이스에서 묘사된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는 그런 사회가 미래에는 정말로 나타날 수 있을 법하게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고 입체적이며 실감나는 묘사를 보여주며, 무엇보다 그런 곳에서 옛 소재에서 따 온 등장인물들의 드라마는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투 파라다이스 1권에서는 두 이야기에 걸쳐 여러 세부적인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사건은 개별적으로도 흥미진진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여러 이야기가 종합적으로 연결되고 입체적으로 구축되면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구성을 매끄러우면서도 유려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소재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서, 공감되고 인상적이며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기에 더욱 기억에 남게 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