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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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아가는 영생이 창작물 등에서 이상적인 이상향이 아니라 부정적이고 불행한 특징처럼 묘사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자 불행처럼 묘사되는 작품이 워낙 많아서, 마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죽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고 어색해질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어떨까요? 고통이 사라지고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고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는 것과 과연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 개념일까요?


정보라 작가의 고통에 관하여는 SF요소를 대폭 반영한 설정 위에, 사람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기술이 발명된 세계관을 펼쳐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고, 말 그대로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영생과 달리, 섭리를 어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언젠가는 생명이 끝나니 그 생명이 끝나기 전 살아 있는 동안 더 편한 길을 택하는 것 정도로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고통에 관하여는 저 질문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모종의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통에 관하여는 언뜻 보면 반어법적인 역설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때, 사람들을 모든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기술이 발명된 이후, 오히려 고통을 느끼고 싶어하면서 고통받는 것을 추구하며 그 기술을 다시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학적인 면에서 고통이란 인체에 적당하고 적절한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런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며 납득하게 될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납득하며 공감되기 시작한 순간,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신기술이라는 표면적인 소재에 감춰져 있던, 여러 사람들기 각자 펼쳐내는 드라마가 치밀하게 맞물리며 인상적인 명장면과 명대사를 연달아 만들어내는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통에 관하여는 SF 장르로 분류되는 작품답게, 모든 고통을 없앤다는 설정의 기술을 비롯해서 현대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장치나 기술 등이 여럿 등장합니다. SF설정으로 만들어낸 신기한 장비 등을 구경하는 재미로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동시에 그런 기술이나 설비가 정말로 있다면, 사람들이 느끼거나 행동하게 될 법한 부분이 치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현대인에게 그런 기술이 생긴다면, 실제로도 저렇게 생각하며 행동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게 되는 전개와 묘사 덕에, 어느새 이 소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작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이야기가 고조되며 끊임없이 인상적이고 새로운 에피소드와 테마가 나오다가, 결말에서 그때까지 전개된 여러 요소가 맞물리고 합쳐지듯이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대목이 강렬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 강렬함과 함께 납득하게 되는 결말 역시 좋았습니다.


이채로운 요소를 독특하고 인상적으로 활용하면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고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빚어내는 데 성공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모든 것을 뒤엎는 반전처럼 보이다가, 하나하나 차분하게 분석해보면 오히려 후반부 이전의 여러 복선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대목과 전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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