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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일단 회고록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책입니다. 저자 비비언 고닉이 격고 경험하는 여러 일과 비비언 고닉이 주도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행동,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마다 비비언 고닉이 생각라고 느낀 여러 내용 등이 주요 주제입니다. 그런 내용을 담담한 문체로 다루면서, 단순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 가면서도 생생한 이야기로 빚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이른바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해 조망하고 돌이켜보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언뜻 보면 에세이로 쓰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이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저자 비비언 고닉은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같은 분위기를 강조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에피소드 중 연극이나 영화 등 극적인 창작물의 소재가 될 만한 부분은 없겠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아무리 일상 소재 에세이라고 해도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다루는 경향이 얼마나 심한지, 이게 에세이인지 매일 쓰는 일기장에서 별 일 없던 날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기를 수록한 책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글 자체가 일상적인 이야기도 마치 특별하고 의미 있는 행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순간을 인상적인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물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문장과 표현에만 감탄하다 보면 저 점을 자칫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 번 깨닫게 되면, 자꾸만 의식하게 될 정도로 그 특징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역설적인 것은 그 지극하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이야말로, 이 책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 비비언 고닉은 이 책에서 뉴욕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면서, 일상적인 행복을 충분히 누리면서 여러 재미있는 경험도 즐깁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짝 없는 여자와 도시'라는 제목과 연계하면, 그 일상적인 풍경이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결혼한 상태가 아니기에 남편이 없는 여성이 뉴욕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아가면서 일상의 여러 기쁨과 재미를 충분히 누린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다면 쓸쓸하게 살거나, 인생의 재미에서 상당 부분을 포기하게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견해는 고정관념 수준으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마치 전혀 그렇지 않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지만 결혼하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일상적인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모습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여러 사람과 의미 깊은 관계를 맺고 충분히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저자 자신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 책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비단 결혼 여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특정 조건을 갖춰야만 의미가 있고 어떤 자격을 가진다는 인식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히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이른바 결혼적령기가 지났는데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할까요? 그리고 결혼 외에도 이른바 사회인이라면 특정 조건을 마땅히 갖춰야 한다는 식으로 인식되는 대상이 종종 있는데, 그런 것을 일부러 거부한 사람은 무조건 불행해질까요? 이 책은 비비언 고닉이 도시 곳곳에서 더없이 자유롭고 즐겁고 자연스럽게 일상을 보내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으레 요구하는 이른바 기본적인 조건을 굳이 전전긍긍하며 갖추지 않아도, 얼마든지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 자체가 인상적이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회고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