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특별 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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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덜컥 읽으면 난감한 기분이 되기 십상인 책입니다. 제목을 보면 음악 작품, 특히 작곡가 브람스에 대해 다룬 책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작중에서 브람스의 음악은 줄거리 내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도 아닙니다. 브람스가 언급되는 장면을 소설 속에서 모두 들어내도, 줄거리 전개에 지장이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굳이 말하면 작중 배경인 프랑스, 특히 파리 쪽에서는 적어도 작중 시대 배경인 20세기 중반에는 대중적 인기도와 인지도를 지닌 작곡가가 아니었기에,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뻔하고 전형적인 대화는 아니라는 것 정도의 의의 정도만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기대한다면, 더욱 당혹해질 부분이 많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줄거리는 삼각관계 속에서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한동안 고민하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은 이른바 조건이 훨씬 좋은 상대 대신, 조건이 더 나쁜 축에 속하는 상대에게 이끌립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조건은 비단 물질적 조건뿐만 아니라 성격과 인품 등도 포함해서, 이른바 조건이 좋은 쪽이 인간성도 성격도 훨씬 좋아서 같이 지내기가 훨씬 마음 편한 상대입니다. 그런데 왜 오히려 마냥 편하지만 않은 상대에게 끌리게 되는 걸까요?


표면적 줄거리만 놓고 보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삼각관계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누가 봐도 조건이 더 안 좋은 쪽에 마음이 끌려서 선택하는 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섬세하면서도 절묘한 심리 묘사에 빠져들면서, 브람스라는 이름이 작중에서 사용되는 의미와 표면적 줄거리에만 집중하면 포착하지 못했을 많은 이야기에 닿을 수 있게 됩니다.


주인공은 39세의 여성. 의학이 발달해서 마흔 줄에 접어들어도 아이를 거뜬히 낳을 수 있는 현대에도 이른바 결혼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말을 들을 나이인데, 작중 배경인 20세기 중반이라면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남자라면 청혼하지도 않을 정도의 나이입니다. 여주인공 폴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고, 결혼하지 않아도 여유롭고 너끈하고 거뜬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나 여유가 있다고 하기에도 힘들 상황입니다. 그런 입장의 폴에게 작중 벌어진 사건과 일어난 일들을 보면, 마흔 줄 여성에게 분에 넘칠 정도로 조건 좋은 혼처가 나타난 이야기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시몽과 로제가 삼각관계를 형성하던 그 때까지만 해도, 이른바 조건 좋은 쪽 인물과 결혼하기만 하면 보편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꾸린다는 평판을 들을 법한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왜 이른바 성격을 포함한 조건이 더 나쁜 쪽에 폴을 자꾸만 끌리는 걸까요? 그 쪽과 같이 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폴이 왜 그런 결정을 하고, 그런 생각이 들고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어느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과 결말만 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을 법한 심리를, 더없이 섬세한 묘사만으로 어느새 이해되고 공감되게 만든 프랑수아즈 사강의 필력과 함께 말입니다.


20세기 중반. 세계 2차 대전의 상흔이 아물어갈 무렵, 그리고 수많은 파격적이고 선도적이며 이례적인 변화와 새로운 이론 등이 나오던 시절. 또한 그 이전의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있던 시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끼인 세대 같은 시절의 입장와 배경마저도, 섬세한 심리 묘사의 일부처럼 그려내면서, 입체적인 공감과 생생함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묘사 역시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특별 한정판은 정돈된 느낌의 표지 디자인을 비롯해, 특별 한정판만의 매력이 여러 모로 느껴지는 멋진 완성도와 만듦새가 느껴지는 책이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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