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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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플라멩코 추는 남자의 초반부는, 제목을 플라멩코를 배우려는 남자쯤으로 지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것도 그 앞에 '정년 은퇴한 나이에' 같은 수식어를 붙여서 말이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초반부는 예순 나이를 훌쩍 넘기고 당연히 정년 은퇴한 주인공 남훈이 스페인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수준의 계기로, 스페인어와 함께 플라멩코 춤을 배우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게 이른바 한국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얼마나 희한한 일로 비쳐지는지, 그런 시선이 개인에게는 어떤 상처가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눈으로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 소설 내내, 예순 살이 넘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나아가 플라멩코 춤을 배우고 추는 데 전념하는 남훈의 모습을 미묘하게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정확히 말하면, 여러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고깝게 보는 듯한 대사와 행동이 자주 묘사된다. 레퍼토리는 거의 똑같고 워낙 뻔해서, 나중에는 앞의 한두 문장으로도 전체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요약하면 그 나이에 그런 걸 배우려고 하다니 주책맞고, 주변 사람들이 쪽팔리고 덩달아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식이다.


예순 나이는 새로 외국 춤을 배우기는 너무 늦다고? 정년 은퇴까지 했으면서 무슨 주책이냐고? 하지만 그렇다면, 정년 은퇴 전에 외국 춤을 배웠다면 그 때는 시기가 적절했다고 했을 것인가? 천만에.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젊은 시절에도, 중장년 시절에도, 그 때에는 그 때대로 경쟁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봉급이나 일자리와 직결되는 경쟁력에 집중하라는 말만 하지, 빈말로라도 플라멩코 춤을 너무 늦기 전에 배워서 잘 되었다는 식의 말을 안 할 사람들이라는 티를 노골적일 정도로 팍팍 내고 있다. 그런 식의 말을 대놓고 하기도 한다.


너무 늦었다고? 예순이 넘은 나이, 아직 팔팔한 기운이 넘친다면, 새로운 도전을 해도 되지 않을까? 정년 은퇴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뜻만이 아니라, 직장 등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입장이라는 뜻도 된다. 적어도 남훈은 그렇다. 그리고 수십 년 간 열심히 벌고 착실히 저축한 돈이 있고, 그런 돈을 마련할 정도로 수십 년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면, 또한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을 새롭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안 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남훈은 일견 낯설고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식으로 조목조목 이야기한다면 어느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이 이야기를 바로 직접 실천하면서 현실로 만들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옛 속담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것도 여러 번. 남훈이 예순 넘은 나이라서 건강하기는 할지언정 마냥 날렵하지는 않은 몸으로, 젊은이보다 훨씬 힘들게 스페인어와 플라멩코 춤을 배우는 모습은 미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무리 연습해도 당장 눈에 띄는 발전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꾸준히 노력하고 연습하면서, 처음과 끝을 비교하면 부쩍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치 낙숫물의 한두방울짜리 물방울이 당장은 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미약하게 끝나도, 그게 계속되면 돌을 뚫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이 속담은 비단 남훈 개인뿐만이 아니라, 남훈의 새로운 시도를 늙은이의 주책바가지쯤으로만 바라보고 여기던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도 적용되듯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남훈을 고깝게 보던 사람들이, 남훈의 꾸준한 노력과 열정에 조금씩 태도가 변하는 모습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 속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한 번쯤 도전할 수 있을 법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고 감흥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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