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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ㅣ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평점 :
피에 젖은 땅이라는 짧지만 강렬한 제목의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을 펼치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마치 먼지털이로 먼지라도 무심하게 잔뜩 털어내듯이 마구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묘사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사람을 경악하게 만드는데, 첫번째는 만 단위는 거의 기본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이고, 두 번째는 그 수많은 죽음과 희생이 잊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회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00만. 독일이 직접 학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유대인들을 모두 합친 인원보다 거의 세 배 단위로 많다. 하지만 유대인 학살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비극으로 수없이 강조하는 동안,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바로 그 시기에 죽어간 소련과 독일 사이의 전쟁은 어느새 기억과 관심에서 지워져버렸다. 기껏해야 히틀러가 겨울에 러시아로 쳐들어가서 패배한 것을 두고, 어리석은 전쟁을 벌여서 자업자득이 되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은 좁게는 독소전쟁을 다루고, 넓게는 이른바 유대인 대학살을 제외한 세계 2차 대전 시기의 대규모 사망 사건을 다룬다. 대규모 사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도시를 포위해서 도시 안의 사람들이 굶어죽은 사건 등 전쟁 자체의 사상자와는 거리가 있는 죽음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과 무관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투의 사상 기록에는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죽음이 간과되었다. 때로는 사망자 숫자만 남았고, 때로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조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수많은 죽음들에 대해 돌아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으며 얼마나 깨끗하게 잊히고 주목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