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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20년 6월
평점 :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혐오를 정당화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특히 혐오하는 것을 교묘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호도하며, 혐오를 합리화하고 나아가 권장하다시피 했던 수많은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 및 전개 등을 세세하게 정리하면서, 그 사례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폭넓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사례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리고 그 사건 자체가 후대 사람과 외부인, 그리고 내부인 및 관계자에게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지만, 따지자면 힘 있는 자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진짜와 가짜를 뒤바꾸는 것 정도는 쉽다는 듯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거나,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피해자가 피해를 본 사실이 있다는 것마저 얼마든지 간단하게 묻어버리는 일이 많다. 어렵고 거창한 준비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저 힘 있는 사람이 더 큰 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을 사람들이 믿어버리기만 해도, 특정한 특징을 갖춘 사람들을 매도당해 마땅한 집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문명과 혐오는 바로 그런 사례들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 어느새 잠재적 범죄자 집단쯤으로 인식이 뒤바뀌는 일은 천연덕스럽게도 일어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땅히 그런 의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비합리적인 피해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보다 근본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치열하게 행동해야 할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