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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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면tv가 워낙 널리 보급된 오늘날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직접 볼 일도 별로 없다. 그리고 브라운관 텔레비전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내부에 구리선을 잔뜩 사용한 부품이 있어서, 텔레비전 한 대분의 구리선이라면 몇천원 정도의 돈은 충분히 된다는 것. 그리고 구리선을 꺼내려면 브라운관 화면을 깨뜨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유독가스 수준으로 유해한 물질이 잔뜩 뿜어져나온다는 것. 웬만한 나라에서는 돈을 줄 테니 브라운관을 깨뜨려 보라고 해도 거절할 정도의 조건이지만, 그런 물질에 물질에 한 번 노출되는 대가로 몇천원의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나라가 이 세상에는 있다. 한국 돈으로 몇천원 정도의 돈이면 한 끼, 혹은 하루의 음식을 해결할 수 있는 나라. 그러면서도 어지간한 사람은 돈을 벌 방법이 없어서,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그나마 돈을 구할 가능성이 높은 방법 축에 드는 나라.


[지복의 성자]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막상 본문에서는 딱히 언급된 적도 없고 소설과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해 본다. 이 책은 바로 저런 기회조차도 감지덕지로 여길 정도로 열악한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결국 예정되었던 결말을 맞게 되지만 그마저도 이내 외면당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공 격인 인물인 안줌이 언급될 때부터, 이 이야기는 이른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리고 유독물질 공장이 폭발해서 수십만명에게 노출되었던 보팔 참사를 비롯해서, 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명 사람 대접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오히려 멸시당하고 무시당한 이야기가 연달아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이야기에서 열악한 곳에서 사회적으로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절실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잘 그려낸다.


바로 그런 곳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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