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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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주>는 사전적인 의미에서 친절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감정 등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연달아 나오기 때문이다.


날짜는 연원일 단위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그 사건에 대해 화자를 비롯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소상하게 말하면서, 그 날짜만 덜렁 말한 뒤 막상 그 날짜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넘어가듯이 소략하게 언급만 하는 식이다. 게다가 수십 년 전 이야기를 다룰 때는 그 당시의 글,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수십 년 된 글을 별다른 해설 없이 원문 그대로 실어놓은 부분도 있어서, 뜬금없는 느낌마저 준다.


혹시 더 자세하게 일일이 설명하는 쪽이 더 좋았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날짜와 함께 언급되는 사건은 연도와 날짜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웬만한 사람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근현대 사회와 정치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안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들과 얽히면서, 갖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그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리고 순수하고 아무 것도 몰랐던 아이 그 자체이던 화자가,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는 과정 그 자체를 심도 있게 묘사한다. 


1979년 11월 3일. 10월 26일 있었던 그 사건에서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 열린 날.

2009년 5월 27일. 5월 23일 죽었던 사람을 추모하고, 남은 사람이 그 궤적을 기억하는 날.


이 날짜의 대비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주>의 정서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전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저 두 날짜가 어떻게 얼마나 대비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럴 의지와 의향이 동시에 있는 사람만이 사람만이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쪽에 훨씬 더 가깝다. 그 두 시대를 동시에 살았고, 동시에 겪었던 사람으로서 느끼고 생각한 것과 겪어야 했던 일들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세월이 흐르며 잊혀지거나, 정쟁의 도구처럼 왜곡되는 것을 보고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의 이야기는 묻혀버리며, 어떤 때에는 살아 숨쉬며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살았다는 것조차 망각된 듯한 시대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를 말이다.


책 속에 난데없이 러시아 시인 만델슈탐이 언급되는 것도 언뜻 표면적으로만 보면 뜬금없게 느껴진다. 막상 만델슈탐의 작품에 대해서는 독재자를 비판했다가 시인이 탄압당하게 만들었다는 것만 언급되고, 시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바로 그 맥락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의 작품을 적은 종이조차 찢기고 잊히게 되자, 시인의 아내가 모두 암송했기에 살아남아 전해지게 된 작품. 그것은 단순히 말소될 뻔했던 작가 한 명의 작품이 보존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권력이 존재조차 말소시키려던 사람을 주변의 사람들이 기억해서 계속 이어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단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누군가가 살았다는 것과 활동했다는 것이 잊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진주>의 화자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뜬구름 잡는 기분마저 들 정도로 막연하고 두루뭉술하다. 그러면서 갈수록 구체화되어 간다. 어릴 때 거의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어딘가에 쭉 머물러야 하는 처지라, 가족들을 만나러 나올 수조차 없었다. 집에 오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있던 곳은 처음에는 도망 장소, 나중에는 감옥이었다. 그 감옥이 있는 곳이 바로 진주. 그래서 그 모든 일을 회고하는 책의 제목이 바로 진주가 되었다.


제목의 진주는 일단 진주 지역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진주조개가 만들어낸 둥근 구슬 같은 보석을 의미하는 진주는 일단 작중에 직접 언급되는 일이 전무하다. 딱히 보석으로서의 진주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화려한 보석 같은 것이 등장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가 크기는 하다. 하지만 상처를 감싸안아 진주로 빚어내는 천연진주가 고난을 견뎌내서 마침내 귀한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메타포로 자주 등장하는데, 제목이 진주인 책에서 그런 비유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진주.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오거나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아픔을 조개의 유기조직이 감싸서 만들어지는 보석.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보석.

진주 자체의 절대적인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단단한 원석을 정교하고 찬란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나올수록, 가공 없이도 빛나는 진주의 보석 희소성은 떨어졌다. 그리고 양식진주로 완전히 동그란 진주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자, 천연진주는 완전히 동그란 진주를 찾아볼 수 없는 보석 카테고리라는 이미지까지 생겨났다.


보석의 역사에 대해 다룬 책을 읽었을 때에도 진주에 대해서 후자의 의미로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뒤늦게 <진주>를 읽자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조류가 나올수록, 기존의 방식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가치"가 떨어지는 취급을 받고, 서서히 어느새 인정받지도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이 기술이 발달할수록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진주와 어느새 겹쳐 보인다. 다른 것이 있다면 보석 진주는 기껏해야 보석의 가치가 예전보다 낮아진 정도의 취급만 받는다면, 현실 속의 사람들은 그 가치를 갈수록 평가절하당하는 인식이 강해지는 나머지 그 시절마저 망각당하거나 무시당한다는 것일 것이다.


천연 진주가 더 이상 예전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천연 진주를 만들어낼 정도로 진주조개가 상처 입고 그 상처를 감싸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보석 진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처럼,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상이 변모하면서 옛날 시대의 모습은 찾아보기조차 힘든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옛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가치가 소멸되는 것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가치하게 잊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진주>는 탄압받던 가장을 둔 가족이 주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겪은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른바 뒷배경이 없고 권력도 없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짓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고, 그 이야기를 후대에 전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마다 그래왔고,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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