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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옛 속담에는 디지털의 시대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 아주 작은 것도 꾸준히 모으면 큰 것이 된다는 개념 자체는,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개인 차원의 이야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 명이 적은 돈도 꾸준히 저축하면 큰 금액이 된다거나, 조금씩 노력하면 그 노력이 쌓여서 자기 기반이 된다거나, 이런 식이다.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 속담을 적용하게 될 때에도,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경우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속담이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한 번 만나본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조금씩 마음과 관심과 아주 약간의 실천을 모으면, 큰 일을 해낼 수 있고,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나아가 새롭고 혁신적이고 기념비적인 도전을 하고 그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이다.
sns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슬쩍 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인기 있는 sns 목록의 위쪽을 슬 살펴보는 것만이라면 더욱 간단하다. 간혹 게시글을 보기만 하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구체적인 행동을 하자는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 자체도 개인 차원에서는 간단한 일이다. 집 근처 편의점에 가는 정도의 수고만 들이거나, 아주 적은 푼돈을 기부하자는 식의 내용이 거의 대부분인 것이다. 너무나도 스케일이 작아서, 사소하다 못해 하찮게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큰 족적을 만들어낸 많은 사례들을 다룬다. 또한 그 작은 움직임 자체가 처절하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곳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두건을 쓰고 싶지 않을 때, 두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더없이 지극히 당연한 권리처럼 누리는 곳이 있다. 집 안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돌리기만 해도, 깨끗하고 맑은 물이 콸콸 나오고 손쉽게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본인이 먼저 무슨 범죄라도 저질러서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은 이상, 길 가다가 살해당할 걱정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안심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곳도 있다. 일부러 내버릴 가치도 없게 느껴질 정도의 푼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하게 되는 곳도 있다.
상당수는 한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의식하라는 것이 새삼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꿈에서나 상상할 만한, 비현실적인 사치처럼 느껴지는 곳도 있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후자의 사례들을 다룬다. 그리고 sns 에서 아주 작아 보이는 움직임이 모여서, 많은 것을 바꾼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작은 행동이 모여서 성공시켰다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일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꿈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sns 게시물에 잠깐 관심을 보이고 약간의 수고를 들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그 변화에 동참하고 자기 역할을 해내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투쟁에 속하는 사례들도 포함된다. 두건을 쓰지 않으면 처벌하는 나라, 아주 사소한 행동마저 간섭하고 감시하는 나라, 여성이 운전을 하는 것을 나라 차원에서 금지하고 탄압했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법에도 없는 이야기를 권력자 몇몇 명이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의 근거로 삼는 나라, 그리고 테러단체나 범죄조직이 대낮에 활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무법천지같은 나라. 그런 나라에서 사람들을 협박하는 세력이나 법률에 대해, 개인이 맞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 차원에서는 당랑거철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그 이야기를 sns의 파급력을 통해 인터넷으로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감동적인 연대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루어내고, 때로는 목표를 이루고 진척하는 데 성공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의 힘이자, 그 움직임을 조금씩 모을 수 있었던 디지털 인터넷 공간의 힘이다.
이 책은 디지털 인터넷 공간을 마냥 유토피아처럼 찬양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나라나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감시하는 암울한 사례도 여럿 소개한다.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면서, 더욱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감시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하지만 감시 기술이 발전하면, 그에 맞서든 우회적으로 돌아가든 그 감시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그 밖으로 벗어가는 기술과 발상도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 역시 말한다. 그런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sns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만나고 힘을 모을 수 있게 되는 한,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주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푼돈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주 작은 돈을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서, 빈민국의 빈민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이야기는 더없이 감동적이다. 살충제 성분을 덧입힌 모기장이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여러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생명줄처럼 큰 일을 해내고, 우물 하나를 파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맑은 물을 안전하고 손쉽게 마실 수 있게 된다. 먼 나라 일이라고 마냥 침묵하지 않고,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에 나선 것이, 한 나라가 직접 나서도 여의치 않은 일을 해낸 것이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직접 행동하는 것은 더없이 간단하면서 손쉬운 일이라고. 그렇다고 그 모든 일들이 하찮은 것은 절대 아니며,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침묵하지 않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도, 위험하고 거창한 일만도 아니다. 인기 있는 sns 글을 쓸쩍 읽고, 손짓을 하는 정도의 수고만 들여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누구라도 말이다. 이 책이 들려주는 것은 이런저런 성공 사례 자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같이 동참하자는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