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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버스 ㅣ 인생그림책 10
배유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4월
평점 :
밤버스
배유정 그림책 / 길벗어린이 출판
모처럼 굉장히 독특한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짙은 보라색의 표지부터 질감까지
뭔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책 <밤버스>입니다.
한 여인이 여행 가방을 끌고
모자와 스카프로 얼굴을 잔뜩 가린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이 여인에겐 관심이 없고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에 숨은
무지개에 눈길을 사로잡혔더라고요.
이 책은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그림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화풍의 그림이
더욱 시선을 압도하는,
그림 중심의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책 사이즈도 흔히 빅북이라 불리는 크기의 책이라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첫 페이지에 등장했던 여인이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타고 떠나는 환상의 세계를
묘사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 페이지 등장하는
그림들에는 눈이 등장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눈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등장합니다.
화자는 계속 걱정을 합니다.
혼자서 괜찮을지, 짐이 많은 건 아닌지 등등
우리가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으레 하게 되는 많은 걱정들을 읊조리고 있지만
밤버스는 이미 여러 세상을 누비고 있습니다.
아이는 그 환상의 세상을 쫓아가며
눈 모양의 형상을 찾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때로는 콜라주 기법들이 보이는 듯도 하고
때로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는 듯도 하고,
또 때로는 팝아트를 보는 듯도 한 그림들!
평소 여느 그림책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이미지가 스토리를 압도합니다.
이런 그림책은 딱히 이게 무슨 그림이란다!
라고 알려주기도 애매하고
알려줄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느끼는대로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중요하겠죠.
여하튼 여행을 앞둔 여인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데요.
아뿔싸!
그러다 그만 버스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깁니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지금은 사실 함부로 여행을 떠나긴 조심스러운 시절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비단 여행만이 아닐 테죠.
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걱정을 합니다.
그 걱정의 대부분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걱정들이고요.
하지만 지레 걱정하고 염려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도전을 못하면서
우리는 이 책의 주인공이 버스를 놓쳐버리듯
내 코앞에 다가온 기회들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날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 역시 걱정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걱정을 유비무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이것저것 계산해두고 염려해두면
막상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 대처하기가 수월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잔뜩 하느라 잠도 잘 못 자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백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보니,
쓸데없는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고
또 지극히 제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미리 염려를 해둔다고 해서
문제를 발견했을 때
덜 당황스럽거나, 덜 화가 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걱정을 미리 해서
얻은 이득이 하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최소한 걱정은
미리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히 실천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제대로 버릇을 못 고쳤지만
미리 하는 걱정으로 몸살을 앓는 일은
이제는 최대한 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을 하던 시간에
다른 걸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밤버스>가 그런 과거의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그림들과
간결하면서도 여운 깊은 메시지가 어우러진
<밤버스>,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많은 여운을 남겨줄 그림책인 것 같습니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