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이선주 지음, 김소희 그림 / 우리학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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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

이선주 글 / 김소희 그림 / 우리학교 출판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를 만났습니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할머니와 손녀가

뭔가 뜻이 잘 맞지 않았다가 달리기라는 사건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하는 상황 정도를 상상해 보았는데요.

그보다 훨씬 묵직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후루룩 넘겨봤을 때는

삽화도 컬러풀하고, 글자도 그리 깨알같지 않아

저희 큰 아이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책을 읽던 아이가 중반 이상쯤 가자

엄마 이거 너무 어려워하고 책을 제게 주고 가버렸는데요. ;;

 

처음엔 단순히 글밥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을 막상 읽어보니,

.. 초등 중학년 수준인 저희 아이에겐

어려운 내용이 확실히 맞았더라고요.

엄마가 먼저 읽어보고 아이에게 줄 걸

괜히 아이를 고생시켰구나! 후회를 했답니다. ;;

 

이 책은 최소 초등 4학년 이상은 된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사실, 제 생각은 삽화나 글밥을 고려하지 않으면

청소년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의 주인공 혜지는 투머치토커입니다.

그래서 책의 도입부부터 제대로 투머치토커의

진수를 보여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도 처음엔 읽으면서

나랑 비슷한가봐라며

무척 즐거워하며 읽기 시작했답니다. ^^

 

그런데 혜지가 어느 날,

부모님과 고모가 대화를 나누는 걸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할머니의 존재가

불쑥 대화의 중심의 됐던 거죠.

그러니까 책 제목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혜지는 지금껏 존재조차 몰랐던 할머니였던 겁니다.

제 예상은 초반부터 빗나가고 말았네요. ;;

 

세상 대부분의 미혼 이모, 고모는

조카들에게 자의적 호구가 돼 주곤 하죠?

저 역시 그랬고요. ^^

혜지의 고모도 마찬가지입니다.

툴툴거리면서도 혜지가 부탁을 하면

잘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혜지는 우연히 엿들은

할머니의 존재를 파헤치기 위해

마침 주말인 점을 활용해 고모를 꼬셔

서울에서 혼자 사는 고모집에 입성하게 됩니다.

고모에게 대놓고 물어봐도,

고모 집을 샅샅이 뒤져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지 못하고

잠자는 고모 손가락을 이용해

고모 스마트폰을 엿보려다

고모에게 들키기만 합니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집을 나서는 김에 쓰레기 버리는 걸 도우라는

고모의 명령에 툴툴대던 혜지는

결정적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산 상속 전문 변호사 사무실이 적힌 우편물 봉투!

 

하지만 할머니의 존재조차 몰랐던 혜지는

할머니 이름조차 모르니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막막하기만 한데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적어

법률 사무실 대표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냅니다.

 

사실 저라도 이 상황이면

메일을 보낸대도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적어 보낼지

정말 막막했을 것 같더라고요.

혜지의 메일을 보면서

~ 어른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말 잘 정리해 놓았더라고요.

 

이렇게 고군분투를 하느라

저녁도 안 먹고 잠드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엔 평소 눈썹 그리는 걸 포기하고

아침식사를 선택하는데요.

여기서 또 하나의 사건이 시작됩니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한다더니

혜지네 학교도 그런 모양입니다.

눈썹을 그리지 않고 등교한 혜지를 보고

준호라는 친구가 모나리자라고 놀립니다.

이 때 혜지 입장에서조차

조금 과잉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초아가 준호에게 날카롭게 경고합니다.

화장을 하건 말건 혜지 마음이라고요.

 

저도 여기까진 뭐 남학생들이 흔히 하는

짓궂은 놀림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준호는 이전에도 집요하게 또래 여학생들에게

여자는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는

논리를 펼쳐 왔다고 합니다.

 

.. 사실 저 역시 여기까지만 해도

가정교육 잘 못 받은 아이네!

4,50대 꼰대 아저씨들이나 읊어댈 듯한

말을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말하다니!

이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그만큼 저도 무디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스스로 최소한의 화장은 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

 

이런 암묵적 종용이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꾸미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나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자기 관리에 소홀하다는

자기 비하를 하게 만드는 사회적 폭력이 되는 건데 말이죠.

 

물론 저처럼 누가 봐도 뚱뚱한 케이스는

건강을 위해라도 체중관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실 병원에서 권장하는 키 대비 적정 몸무게와

보통 여성들이 생각하는 적정 몸무게에는 제법 갭이 크죠.

특히 나이가 젊은 여성일수록 갭은 더 큰 편이고요.

 

그래서 딱 보기 좋은 몸을 두고도

본인을 뚱뚱하다고 여기고,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제 주위에도 참 많습니다.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저 역시도 날씬해졌을 때 옷맵시가 더 나니

더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옷들조차

여성들에게 그런 날렵한 몸매를 요구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걸 겁니다.

 

그 옛날 풍만한 몸매가 아름다움의 기준이었을 시절

우리가 태어났다면 과연 우리는 풍만한 몸매를

부끄러워하며 다이어트를 하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까요?

당연히 누가 봐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뚱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대나 국가마다 기준이 다른,

통통날씬사이의 몸매를 놓고 봤을 때 말이죠.

 

이 책은 그 부분을 짚고 있는 거죠.

그러니 초등 중학년 수준의

저희 아이가 읽기엔 그 맥락을 짐작해내고

공감하며 읽기엔 무리가 있었을 겁니다.

아직 엄마가 설명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한편 다시 혜지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저는 사실 혜지가 변호사 사무실

봉투를 발견했을 때부터

혹시, 이 변호사 사무실 주인인 변호사가 

바로 혜지의 할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번에도 제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더라고요.

할아버지가 판사였다고 하니,

할머니도 판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데

아무래도 제 추리는 지나치게 단순했나 봅니다. ;;

변호사 사무실 주인인 할머니는

혜지가 찾고 있는 친할머니의 대학동창이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도 동창이었더라고요.

 

그렇게 변호사 할머니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와

현재 할머니가 계신 곳을 알게 된 혜지는

이번엔 고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고

고모와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지만

고모만 먼저 할머니를 만난 후

할머니 건강이 악화되면서

혜지는 또 할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수선한 와중에

자신을 놀리고, 자꾸 눈썹을 그리고 오라며 괴롭히던

준호에게서 난데없이 고백을 받게 되는데요.

그 고백을 거절하자, 준호는 돌변해서

혜지 사진을 몰래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는

남학생들끼리의 놀림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 이걸 보고는 별 게 아닌 게 아니라라는 걸

비로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준호를 그냥 짓궂은 남학생으로 보고 넘긴

저를 완전히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건 장난으로 치부해선 안 되는 문제죠.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성인이 된 남자 대학생들도

과의 남학생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을

하나씩 안주 삼아 올려놓고 품평을 하고

말로 담지 못할 성적 대상화를 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다가 사회적 문제가 된 사건도 떠올랐고요.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N번방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나는 여자에게 특정한 해를 가한 게 아니니까

돈을 내고 그런 동영상을 좀 구경하는 게 범죄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남성들이

유료로 운영되던 그 N번방의 회원이 됐던 거겠죠.

하지만 애초 아무도 N번방에 열광하지 않았거나,

누군가 일찍 신고라도 했다면

N번방이 그토록 커지고 심각해질 때까지

계속 유지됐을 리가 없을 겁니다.

동조만으로도 범죄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겠죠.

침묵은 동의로 간주됩니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범죄를 부추긴 것과 다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ㅜㅜ

이 사건의 핵심을 꿰뚫지 못한 건

준호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혜지가 학교에 나가지 못하자

뒤늦게 알게 돼 부랴부랴 준호를 앞세워

혜지네 집으로 찾아와 사과를 시킨 준호 아빠도,

심지어 혜지의 아빠조차도

좋아해서 그랬나 보다생각했다가

하룻밤이 지나서야 혜지를 조금 공감하게 됐다는데요.

이게 작가의 과장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이야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제기가 돼서

조금 나아지고 있다지만, 과거 경찰들조차도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스토커 사건 등을

대하는 인식 자체는 준호 아빠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좋아서 그런 건데, 부부 사이에 좀 다툴 수도 있지

이런 식의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혜지는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를 짧게 만나게 됩니다.

그 때 혜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좀 닮은 것 같아요.”

 

사실 할머니도 모나리자 눈썹이었거든요.

그런데 혜지가 닮았다고 말한 이유가 그 뿐일까요?

할머니는 왜 아빠와 고모를 두고 떠나,

존재감을 1도 드러내지 않은 채

여태 살아오신 걸까요?

그리고 책의 제목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그 비밀은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를 통해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죠?

 

이렇게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

단순한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좀 있고,

남성과 여성의 성고정관념에 대해서도

평소 좀 고민을 해 본 초등 고학년 이상

여학생들이 읽어야 좀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더 많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특히 아빠들이요.

그리고 엄마들 중에서도 딸 없이

아들만 키우는 엄마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남학생의 짓궂은 장난으로 허용 가능한 범주를

반드시 자녀들에게 강하게 교육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 교육한다고 달라지기 어려운 문제니까요.

부모님들이 마치 손으로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아이가 알아듣고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때까지

반복적이고 깊이 있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1,2년 후 꼭 제 아이에게도

이 책을 다시 읽게 할 거고 저희 아이에게도 계속 교육을 할 겁니다.

여자답게라는 언어폭력을 당할 때

반드시 그게 잘못됐다고 맞설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죠.


저희 큰 아이는 특히 여자답지 못하게라는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많은 아이입니다.

치마보다 바지를 좋아하고, 분홍을 싫어하고 파랑을 좋아하고,

예쁜 것보다 편한 게 우선인 아이거든요.

둘째는 흔히 말하는 천상 여자 스타일이고

저 역시 샤랄라~ 치마가 예뻐 보이고,

분홍 옷들에 손이 먼저 가는 성향이지만

저는 큰 아이에게 분홍 옷을 권할 때

여자가~”라고 말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니 한 번씩은 입어 달라거나,

혹은 엄마 입장에선 옷을 물려줘야 하는데

동생은 파란색 옷이나 바지는 절대로 안 입으려 하니

한두 벌은 양보를 해달라고 말을 하죠.

그래서 저희 아이들은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 이렇게 말하진 않습니다.

둘째도 늘 그런 언니를 보고 자라서 본인은 분홍을 좋아하지만

파랑을 좋아하고, 치마보다 바지가 좋은

여자친구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학교생활이 거듭될수록 큰아이는

여자가 무슨~” 같은 얘길 들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더 격하게 이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그래서 저는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를 계기로

더욱 아이들에게 단단히 가르치긴 할 겁니다.

 

하지만, 여자가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보다

남자가 스스로 달라지는 게

가장 상처와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 길일 테니,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세뇌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가르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자녀가 어릴수록 더욱! ! 이 책,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를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머리가 굵어지기 전, 일찍부터

가르치고 훈육해야 제대로 각인이 될 테니까요.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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