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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황홀한 역사 -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바트 어만 지음, 허형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1월
평점 :
두렵고 황홀한 역사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바트 어만 / 허형은 옮김 / 갈라파고스 출판
<두렵고 황홀한 역사>를 만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육아서가 아닌
성인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읽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다 읽지 못했거든요. ;;
이 책을 읽는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내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아! 내가 원래 이런 책을 좋아했었지!'
너무나 오랜만에 '나'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렵고 황홀한 역사>는
사후세계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죽음 너머, 죽음 다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정말로 방대한 자료를 그야말로 '긁어모아'
일일이 예를 들어보여주면서 우리의 사후 세계관의
변모과정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사실,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인스타의 한 이벤트로 만난 책이라서
책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두께가 만만치 않거든요. ;;
책의 저자는 '바트 어만'
굉장히 유명하고 '핫'한
성서학자라고 합니다.
그의 성서 해석은 언제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그는 놀 논쟁의 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저자도 서문이나 맺음말 등에서
이미 그런 일들이 익숙한 듯,
이 책을 쓰고도 자신이 겪을 일들을
담담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
누가 저에게 굳이 종교를 묻을 때 저는
불교 철학을 좋아하는
무신론자라고 답하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학부시절 동아리 활동에 올인한
무늬만 철학과였지만,
학부 수업을 할 때면 수시로 의아했습니다.
왜 이렇게 대단한 철학자들은 궁극에 가서는
'신'에 대해 이토록 고뇌에 빠지는가..
왜 이토록 '죽음'에 대해 집착하는가..
그게 참 의아하고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이 책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릅니다.
<들어가는 말>을 읽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바트 어만은 궁극적으로 세계관이
나와 많이 다르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을 다닐 만큼
어린 시절 깊은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생겨나는 의문들로 인해
결국은 '기독교를 완전히 떠났다'고 말합니다.
이쯤에서 철저하게 기독교의 성서를
굳게 믿는 분들은 이 책이
위험천만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저는 이 대목에서
아! 읽어볼만한 책이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럼 책의 내용을 살며시 살펴볼까요?
<1장. 천국과 지옥으로의 여정>에서는
베드로묵시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묵시록은 세상이 종말을 맞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예수가 답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기엔 응당 심판 이후, 죄 지은 자들이 받을
형벌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이어집니다.
책은 이런 식으로 구체적 문헌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테지요.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헌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도 비난을 받을 텐데
문헌적 근거가 없이 감히 이야기를 하면
그야말로 씨알도 안 먹힐 테니까요.
그래서 책이 두꺼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문헌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것의 앞뒤 문맥적 상황을 파악해 보면,
혹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찰해보면...
등과 같은 식으로 사후 세계관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길어질 수밖에요. ;;
근데 좀 긴 게 흠이긴 하지만, 재미있고,
훨씬 근거가 뚜렷하게 느껴져서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
어떤 근거를 대도, 믿지 않을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말이죠. ;;
여튼 그렇게 사후 세계에 대해
고대 문헌들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여주지만
저자는 1장의 말미에 가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길 비로소 털어놓습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의 창시자는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천국 또는 지옥에 간다고
믿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이
언제부터, 왜 생겨나게 된 걸까요?
저자는 2장에서부터 차근차근
그 의문에 해답을 찾아갑니다.
<2장 두려운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부터
기록됐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무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긴 서시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뒤이어서 그는 모든 고대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한 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 좋은 예로 소크라테스를 들고 있죠.
좀 아는 사람, 좀 아는 얘기가 나오니
이야기가 점점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7페이지 2번째 줄에
'사상가들은' 띄어쓰기가 잘못돼 있네요.
2판을 인쇄할 때는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저도 일종의 직업병이 있어서 ;;
이런 걸 보면 꼭 눈에 걸립니다. ;;
여튼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 왔을 때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이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바치게.
꼭 그렇게 해 주게, 잊지 말게나"
아스클레피오스는 치유의 신이고,
수탉을 바치는 것은 병을 낫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소크라테스는 죽어서 '치유된' 것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한 마디 덧붙이죠.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건 겁에 질려
맞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전하는 궁극적 핵심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저자가 하고 싶은
궁극적 결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기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세상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불필요한 규범까지 지키려 하고,
약간의 강박증처럼 정의에 집착하는 편이지만,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원동력이
적어도 저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거든요.
<3장 사후 세계 이전의 사후 세계>에서는
고대인들이 품었던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이
현대인들이 품는 불안과 종류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현대인, 아마도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문화 기반 서구인들에게
사후세계가 두려운 것은
심판과, 지옥의 존재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이전 시대 고대인들은 사후세계를
지독한 '무(無)'의 세계로 보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예로 우리가 수태 이름은 많이 들었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두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묘사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묘사가 수백 년 후
다른 작품들에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뒤이어 소개합니다.
사람들의 세계관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무엇이 이 천국과 지옥의 발명을 이끌었을까?"
ㅎㅎㅎㅎㅎ
천국과 지옥인 실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특정한 필요에 의해 ‘발명’됐다는 것!
이 발상 자체가 너무 유쾌하고 흥미롭지 않나요? ^^
<4장. 정의의 실현? : 사후 상벌 개념의 부상>에선
그 의문에 해답들을 찾아나갑니다.
음 고백하자면 4장에서 저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음.. 이야기가 계속 너무 반복되고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계속~
낱낱이 알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오늘까지라는
서평의 마감 시한이 신경 쓰인 것도 있었을 겁니다.
마음이 쫓기기 시작한 게지요.
그래서 결론은 5장까지만 읽고
서평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쫓기듯 읽어선 머리에 잘 남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읽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대로 책을 덮으면
다시 안 펼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장만 더 읽어보기로 한 겁니다.
<5장. 히브리 성경과 죽음 후의 죽음>인데요.
5장엔 드디어 하느님이 등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사후 세계관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여기서부터 아마도 본격적으로
오늘날 많은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사후 세계관의 양상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기반으로
고대 이스라엘 시대,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대한 예언으로 다시 일어선다,
혹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이 새로운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뿌리내린 것은
심각한 수준의 박해와 순교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즉,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데도 잘 살고
종교적 신념을 지킨 자신들이 고통받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본질적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그리고 6장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부활 개념을,
7장에서는 왜 부활을 기다리는지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8장부터는 예수의 등장과
기독교의 사후 세계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비로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4장에서 느슨해졌던 관심이
5장에서 확 다시 일어났습니다.
꼭 올해 안에 이 책을 완독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서평을 쓰기 전 저자의 맺음말을 읽어봤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겁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죽은 후에는 왜 존재해야 하나?"
서구인들의 이성 저 너머에 있는
신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생각들의
근간을 만나보고, 그 수천 년의 관념에
과감히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
<두렵고 황홀한 역사>는
성서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성서학 따위에 관심이 없더라도
서양 철학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제법 도움이 될 책이 돼 줄 것 같습니다.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올 겨울
<두렵고 황홀한 역사>
완독에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도 도전을 이어가겠습니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