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 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를 두드리는 사유
이진민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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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를 두드리는 사유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이진민 지음 / 웨일북 출판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는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원작
<철학하는 엄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공부는 내팽겨치고, 동아리 활동에 더 매진했던 터라
부끄럽게도 무늬만 전공이지 사실 아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
그래서 철학에 개인적 관심이 더 많은 분들이 
분명 저보다도 더 많이 철학적 깊이를 갖고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철학 전공이지만 교양 수업으로 철학 수업을 열심히 들은 분들만도 못한 지식과 깊이를 가진 저는 도무지 육아와 철학의 접목이라는 게 감이 오지 않아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에 '철학'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학? 나랑은 동떨어진 이야기인데? 나는 하나도 모르는 세계인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결론은 결코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계의 소수를 만나는 논문보다는 일상의 다수를 만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라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정말 유쾌하게 글을 써내는 재주가 있어 보입니다. ^^

 

보고 있으면 수시로 웃음이 절로 나는 그녀의 위트들이 책 곳곳에 가득 채워져 있어서 철학! 그딴 거 잘 몰라도 술술 읽히는 책이었답니다. ^^

먼저 첫번째 장에서 임신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던집니다.

"나지만 나는 아닌 존재"
우리가 임신 상태일 때 아이와 나의 관계가 딱 그러하지요. 

이 장의 내용 중 저는 플라톤의 동굴에 비유한 임신 상태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에 무척 공감이 됐었는데요.

 

플라톤의 동굴은 무척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죠.
동굴 벽면만 보도록 결박된 채 살아가는 죄수들에게 세상의 모습은 그림자로만 인식되지만, 어느날 이 결박에서 탈출한 철학자가 그림자가 아닌 대상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와 죄수들에게 현실세계를 알려주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죠. 
임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인식도 이러한 상태인 거 같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는 건데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임신부들의 모습, 
하지만 결코 그건 현실이 아니죠. 아니 현실일 수 있지만 현실의 극히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고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느끼는 수많은 불편과 낯설어지는 내 모습, 극도로 예민해지는 감각과 평소와 다른 먹성, 수많은 부정적 단어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임신의 기간.. ;; 
이런 건 대체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걸까요? ;;
하지만 우리가 부끄럽고 당황스럽고 때론 서러워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순간들이 실재 모습이고 미디어를 통해 강조되는 임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허상이라는 사실.. 나만 못난 게 아니고, 나만 모자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싶어요. ^^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육아를 하는 찰나 찰나의 순간마다 철학적 질문과 사유와 맞닿을 수 있는 지점들을 알려주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위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엄마가 되었습니다>에서는 출산 과정에서 직면한 현실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는데요.

 

가령 추술대에 올라 자유와 사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재왕절개를 하지 않았지만, 출산 과정의 경험은 누구나 아주 유쾌하기만한 경험이 아닌 것은 모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저자가 털어놓는 자신의 리얼한 출산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유하고 또 사유했던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나하나 쫓아가게 됩니다.
 
저는 출산과정 때보다 임신 과정에서 자유와 실존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데요. ;;
조산 기미가 보여서 맥수술을 한 후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을 때였지요.
맥수술 전문 병원으로 유명했던 곳이라서 큰 병실 칸칸마다 저처럼 맥수술을 한 산모들이 최소 예닐곱명은 누워 있고, 거기에 보통 남편이 보호자로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수술 24시간 전에는 누워서 큰 볼일을 보라는 간호사의 냉혹한 한 마디에 ㅎㅎㅎㅎㅎㅎ 밤새 실존적 고뇌에 빠졌던 적이 있었거든요.
나의 자존감은 무엇이며, 나의 자존과 아이의 생명 중 무엇이 우선인지 고민하게 되고 말이죠.
물론 그런 상황에서 저처럼 크게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오로지 아이만을 생각하며 주어진 과제를 해내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 역시 그분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웠지만, 결론적으로 저는 저에게 주어진 그 숙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었답니다. ;; 그 때 저는 알았지요. 나는 모성애가 강한 엄마가 아니구나 하는 걸 ;;
저의 해결 방법은 간호사가 스스로 화장실에 가도 된다고 허락하는 가장 이른 시간이 될 때까지 최대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저의 문제를 해결했거든요. ;; 아이가 아무리 중요하고 지금 나의 작은 행동이 아이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고 해도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마지막 무언가는 끝내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

<잠깐만요, 엄마가 된다는 게 이런 것이었나요> 역시도 정말 많은 공감이 됐던 장인데요.

 

특히 수유에 관한 경험.. ㅎㅎㅎㅎㅎ 수유에 관해서라면 저도 ㅋㅋ 책 한 권을 써도 될 정도로 온갖 경험과 고민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인데요.

 

저는 우리 사회가 굉장히 강력하게 압박하는 모유 수유에 대한 강권에 휘말려, 모유수유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을 갖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에 비해 원만하고 무던한 성격을 갖고 있지 못하고 예민하고 원칙주의자처럼 굴어서 모유수유에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

 

정말 다시 한대도 그리 할 수 없을 만큼(다시 한다면 더 여유있는 마음을 갖는데 더 노력을 했겠지만) 모유수유를 성공하려고 모진 노력을 다했었는데요. 그 때 수유 지도와 관리를 받는데 돈을 물 쓰듯 쓰고, 매일 매회 수유 일지와 유축 일지를 쓴 걸 여태 갖고 있을 정도로 몸고생 맘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그 때 저는 내가 엄마인가 젖소인가 ;; 뭐 그런 말초적 고뇌에 빠져 있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건 집착이지 노력이 아니구나! 무엇을 위해 이렇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그 본질적인 물음에 닿고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져서 모유수유에 대한 피나는 노력을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혼합 수유를 거쳐 분유 수유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죠. 모든 엄마의 가슴이 폭포수처럼 모유를 쏟아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고 해서 엄마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니 마음에도 생활에도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노예와 같은 시간에서 제대로 벗어나는 건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아이에게 집착하거나, 소셜 미디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하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무척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자는 아이를 키워온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경험들을 무척 진솔하고 재미있게 풀어놓으면서 그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경험들 속에 바로 철학이 숨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면>에서 저자는

경이로운 눈빛과 강렬한 호기심과 긍정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접하고 느끼는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철학자다운 근본적 힘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닮아가야 한다고, 아이가 지닌 그 경이감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말로 우리가 해야할 바가 아니겠느냐고 말이죠.

 

생활 속에서 멀리 있지 않은 철학. 혹은 철학적 사유~
그 시작을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와 함께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육아를 시작하기 전, 임신을 준비하고 있거나 임신상태인 분들이 읽으면 더 좋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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