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쏟아지던 여름
임은하 지음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수상작
햇빛 쏟아지던 여름
글쓴이 임은하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출판

 <햇빛 쏟아지던 여름>은

 지난해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스토리 공모전 동화부문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아직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은 많이 접해 봤던

<복제 인간 윤봉구>의 작가였던 임은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제목처럼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노랑으로 가득찬 여름날의 풍경이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임은하 작가의 전직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책을 접하게 된 건데요.

한 번 책을 펼쳐들자마자 책을 덮을 때까지 

멈춤 없이 순식간에 읽어내게 됐네요.

책의 주인공인 설이는 변호사 아빠, 새엄마와 살고 있는 여중생입니다.

엄마는 몇해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새엄마는 그림책 속 새엄마들처럼 표독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빠보다 설이를 더 잘 다독여줍니다.

하지만 쓸쓸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설이의 마음이, 일상이..

그런 새엄마의 위로만으로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질 순 없죠.

설이는 아빠와 새엄마의 태교여행에 동행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질문을 쏟아내는 할머니댁 대신

평생 혼자 살면서 디자이너로 여전히 바쁘게 일하고 계신

고모할머니댁에서 며칠간 지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모할머니의

큰 비밀을 알게 되는데요.

바로 고모할머니는 영혼을 만나고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

 

아직 엄마와 할 말이 남아 있는 설이는

다짜고짜 지방으로 내려가시는 할머니를

무작정 따라나섭니다.

 

할머니의 비밀을 알아내야 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지!

그렇게 시작된 여정 속에서 설이는

고모 할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해 듣게 됩니다.

공장 여공에서 시작해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로 성공한 고모할머니!

 

고모할머니는 우리가 일고 있는

6,70년대 많은 소녀들이 그러했듯이

장남인 오빠의 사법고시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가서 미싱을 돌린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사랑을 만나게 된 건데요.

수십 년 만에 그 첫사랑의 부고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서게 된 겁니다.

 

선배들에게 전해 들었던

민주화, 산업화 등과 같은 그 시절 이야기가

이제는 어느새 할머니 세대들의

소재로 됐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또 한 번 세월의 흐름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모할머니는

통상적인 할머니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옷도 화려하게 입고,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내켜하지 않고

아이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 말이죠.


하지만 ㅋㅋ 전형적인 할머니의 이미지라는 것도

전형적인 엄마의 이미지라는 것도

어쩌면 문화적 폭력일지도 모른다고 평소 생각해온 저로서는

이런 설정 자체가 더 맘에 들었습니다. ^^

 

사춘기 시절, 제가 뭐라고만 하면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치부해버리는

어른들이 참 싫었는데요.

설이도 그렇다는 사실에 또 못내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요.

생각해보면 '사춘기'라는 재단 자체가

참 맘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날 이후로 저는 유년시절의 저와는 달리

여전히 까칠하고, 여전히 좀 냉소적이고,

여전히 때로 공격적이기도 하니

그 시절 저의 까칠함은

'사춘기'라는 몇해 앓고 사라져버리는

일정한 시기라고 하기 보다는

부모님의 딸이기만 했던 객체에서

지금의 제가 형성되는 주체로

변화가 시작되는 과정이었을 뿐

단순히 사춘기로 치부해버릴

특정한 시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직 저희 아이들이 어리긴 하지만

아이들이 사춘기가 올 무렵이 되면

'사춘기라서 그래'라는 섣부른 재단보다는

저희 아이가 어떤 인격체로 변화해가는 과정인지를

좀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설이는 고모할머니와 할머니의 과거를 향한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곳에서 학교에서 맺는 그렇고 그런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 관계도 맺게 되고

할머니의 첫사랑을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여러 사건과 이야기들 속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희생에 대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돌발적인 여행의 본래 목적이었던

엄마와의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데요.

그래도 그 여정의 과정 덕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가신 엄마..

슬퍼하는 것도 아파하는 것도 두려워

그냥 모든 것들로부터 달아나 그대로 얼려버리듯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독한 박설!로 살아가고 있던 설이가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끝,

스스로 굳게 굳게 걸어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면서

설이는 비로소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목놓아 울음을 터뜨리게 되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 아득했던 저의 사춘기 시절도 떠오르고

제 주변에 참 많은 여전히 싱글인 친구들의 미래도 그려져 

혼자 빙그레 웃기도 하고, 

설이가 엄마가 돌아가신지 4년이나 지나 

목놓아 우는 장면에선 저도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많은 것들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설이는

가슴 한 켠 묵직한 두려움으로 남아 있던 이복동생과의 만남도

생명이 주는 그 신비한 느낌 덕분에 무사히 지나가고

설이는 이제 진정한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는데요.

멋쟁이 디자이너 고모할머니의 이면 시린 기억과  

독한 박설!로 불리는

설이의 감춰진 아픔이 긴 여운으로 남는

<햇빛 쏟아지던 여름>이었습니다.

 

 

 

#햇빛쏟아지던여름, #글쓴이임은하, #고래가숨쉬는도서관출판, #2019제7회교보문고스토리공모전수상작, #사춘기, #가족, #관계회복, #성장기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