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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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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왕자... 어려서 읽고 청소년 때 읽고,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 읽을 때 마다 매번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책이다. 특히 작가의 행방불명은 그가 어린왕자가 사는 곳으로 갔다는 신비감까지 준다. 작가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어린왕자는 신비감을 주며, 아름다움을 주며, 꿈을 주는 책임에는 틀림 없다. 세계대전 당시 세상이 흉포함으로 가득차던 때,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인간에게 살아있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어린왕자를 새롭게 접할 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이었다. 첫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들이는 이야기였는데, 결론은 우리들도 국어책을 길들여서 몇년 뒤 수능때 참 뿌듯한 느낌으로 국어책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연애할 때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게 느껴진다고....

이 책은 참 여러가지도 읽혀질 수 있는 것 같다. 마치 백지위에는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닌가? 백지같은 소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동화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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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 - 인류 역사 연구의 고전
루이스 헨리 모건 지음, 최달곤.정동호 옮김 / 문화문고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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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대사회! 지금 까지 나는 고대사회의 모습을 막연히 부족생활, 사냥이나 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식의 형태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은 고대사회에서의 일정한 발전규칙을 말한다.

이 책에서 모오건은 경험지식의 누적, 도구의 사용, 생활 자료 등을 기준으로 인류의 발전흐름을 야만상태(野蠻狀態 a state of savagery), 미개상태(未開狀態 a state of barbarism), 문명상태(文明狀態 a state of civilization)로 구분하고, 그 각각의 단계를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누고 있다.

전 인류의 발전 단계를 일정한 틀로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종족이나 국가적이 삶의 형태에서 공통점 내지는 일정한 맥락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일 것이다. 유럽과 아랍처럼 많은 영향을 주고 방은 지역 사람들의 삶조차도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인식되지 않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대륙과는 거의 영향을 주고받지 못한 아메리카나 폴리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생활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이 때문에 10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씨족(氏族), 부족(部族), 종족(種族), 연합체(聯合體)에 대해서 많은 지면은 할애하고 있다. 즉, 그만큼 통치관념의 발달이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이 컸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성(性)을 기초로 했던 사회 조직이 점차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경이로운 일이다. 단순한 조직으로부터 현재의 복잡한 조직으로 발전된 것을 보면, 수만 년에 걸친 인류 진보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또 앞으로도 더욱 복잡한 조직으로 진보해 나아간다는 사실과 더불어 인류 진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 말이다.

그 밖에 혈연가족, 푸날루아 가족, 일부일처제 가족, 대우혼 가족, 가부장제 가족으로 설명하는 가족관념의 발달과 상속과 관련되는 재산관념의 발달 역시 진보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 모오건은 이 책을 통틀어 '인류 종족의 역사는 그 근원에 있어서 하나이고, 경험에 있어서 하나이며, 진보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덧붙여 수많은 예증과 함께 '인류 기원의 단일, 동일한 발전 단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욕구의 유사 및 비슷한 사회 상태에 있어서의 정신작용의 균일성을 보여주는 경향을 띠고 있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진보의 틀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또 모든 인류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동일할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사람들과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적 차이로 인해서 행동양식도 다르게 나타난다. 바이킹이 바다로 나아간 반면, 몽고족은 대륙으로 나아가지 않았던가. 이처럼 하나의 틀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고대사회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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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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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수능을 위해서 소설 「광장」에서 '광장', '갈매기 2마리'의 의미를 외우던 기억이 난다. 소설을 읽지 않고 안다는 것, 소설뿐만 아니다. 어떤 것을 체험하지 않고 안다는 것은 너무 시각이 단편화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명준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도 몰랐었다. 작가가 출판 이후에 네 번이나 수정했다는 이 소설은 혹시 작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사실, 어쩌면 사회 속에 살면서 사회의 영향하에 놓여 있는 우리로서 쉽게 느끼기 힘들 사실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 더구나 소설의 반을 차지하는 북한은 그야말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세계가 아닌가.

초반부터 끝까지 광장과 밀실의 비교, 또 남한과 북한의 비교는 둘 모두를 가질 수 없었던 6.25이후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명준이 월북한 이유는 남한의 위선으로 가득 찬 광장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또한 남한은 그나마 믿었던 자신만의 밀실이 보호되지 못한 사회였다. 정권에 의한 개인의 자유의 침해는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과거 수 십년간 이루어졌던 것 같이...

월북한 명준은 나름대로 자신의 이상을 펴보려 하지만 북한의 광장도 잘못된 광장이고, 밀실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다. 명준은 나름대로 연인과의 사랑으로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지만 6.25도중 은혜의 전사로 그 마지막 이유마저 사라지자 더 이상 북한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지고, 중립국 행을 택한다.

결국 사람에게는 광장과 밀실이 모두 필요하지만, 이 중 하나만 존재하는 사회, 게다가 그나마 그 하나마저 거짓된 공간이라면, 그 삶은 삶을 삶답게 해주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고, 명준의 마지막 선택이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준이가 죽기 전, 그의 손에는 부채가 있었고, 점점 부채의 사북까지 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죽음을 택한다. 이 모습은 마치 이육사의 시 '절정'에서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라던가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고 표현한 부분과 흡사했다.

한계상황에서 인간이 선택 할 수 있는 일은 죽음밖에 없을 것이고, 해방 후 남북한 사회는 개인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물론 그 원인은 남북 분단과 서로 다른 이념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통일로 귀착되는 사고방식은 다소 60,70년대의 박정희 정권 식의 사고 방식 같지만, 말로만 내세우는 통일이 아닌 진정한 통일이 필요한 것 같다. 최소한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더라도 두 나라 모두가 사상과 이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면 명준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서 나온 '전짓불 체험' 식의 사고 방식이 해방 후 많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보면, 너무도 우리 현대사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잠깐 떠올려 보았다. 명준이 생각하던 광장과 밀실 모두가 정상적인 상태로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광장의 많은 부분이 넓어졌고, 밀실도 함부로 침해를 당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졌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정한 광장, 밀실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부정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

더 이상 명준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주어진 대로의 삶이 아닌 열심히 사는 삶을 통해서, 다시 말하면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에 진짜배기 광장이 있고, 개인도 진짜 밀실을 가질 수 있도록 살아야 함을 느꼈고, 끝으로 삶을 광장과 밀실로 나누어 보는 작가의 시각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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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도 - 1986년도 제1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성한 지음 / 동천사 / 198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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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대사 「일찍이 위대한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햐 ∼!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듯한 이 첫분장이 나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 시켰다. 바비도, 음…우선 이 사람은 정말 평범한 너무 평범해서 하찮기 까지한 그런 소시민이다. 그는 몰락한 교회를 향해 어떤식의 선택이 정의를 살리는 일이고, 세상을 구하는 일인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가 택한 건 정의를 위한 죽음이었고, 그건 외로움과 고독 끝에 맡보게 되는 인간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죽음 속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보여준다. 부패한 교회 세력가들의 거대한 위선, 재판정에서 죽는게 두려워 자신의 신념을 바꿔 버리는 사람들... 거기에 바비도는 분노를 느끼며 스스로의 길, 죽음을 택한다. 바비도의 분형날, 모든 민중은 그를 향해 원망과 증오를 퍼붓는다. 자신은 죄가 없다면, 헨리 4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불길로 타오른다.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봤을 때,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첫문장 이었던 「일직이 위대한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이 부분이 무슨 의미냐 하는 것이었다. 성스럽고, 위대했던 교회의 부패, 처음에는 그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비도가 끝까지 정의를 지키며 타 죽는걸 봤을 때 내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갔다. 어쩌면, 그 일찍이 위대한 것이란 '사회정의 혹은 진정한 양심'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위대한 것으로 똘똘 뭉친 바비도에게 민중은 모욕을 가했고, 그리고, 그 모욕을 받은 위대한 것은 연기로 피어올랐다. 그로써 이 시대에는 정의로움과 양심이 사라졌다는 걸 작가는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아! 아니 어쩌면 마지막 헨리 4세의 깨우침에 아직은 정의의 불씨 정도는 남아 있다. 뭐 이런 것을 제시하려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저 계속 생각해 봤다.

너무 특이하고, 뭔가 멈춰 서버린 느낌…그러니깐 이야기가 반복되다가 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느낌 때문에 숨이 거칠어졌다. 내가 본건 어쩌면 한편의 잛은 소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숨이 컥컥 막혀왔다. 진정한 양심과 정의를 아무도 몰라주는 그래서 그것이 이제는 의미없기까지 한 요즘 사회가 정말로 소설보다 더 무서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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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본 철학이야기
김향선 / 북코리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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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왜 어려워야만 되는 것일까? 지금 내 앞에는 흰 표지에 까만 글씨 너무 평범한 책이 한 권 놓여있다. 이것이 철학 책이다. '굵다란 글씨에 큰 그림까지… 그 어렵다는 철학을 이 정도의 무성의함(?)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내가 이 책에 대해 처음으로 내린 평가였다. 상식을 깬 책의 모양을 보며 나는 더욱 책에 몰입했다. 이 책을 임의로 철학의 도입, 본질, 철학과 현실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첫 이야기는 비트겐스타인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비트겐스타인은 파리잡이 항아리를 우주에 비유한 정말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철학자였다. 항아리 속에 갇힌 파리가 항아리를 빠져나가려 함을 우리 인간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갈구하며 처해진 상황을 벗어 나가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이 얼마나 탁월한 비유인가!
비트겐스타인은 이 비유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의 길을 찾다가 끝내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맞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인간이 찾아가는 자신의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며 '사르트르의 견해'를 접해갔다. 이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나는 철학에 대해 아무런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사르트르의 견해'를 읽고서는 어렴풋하나마 철학을 이해하게 되고, 또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느끼고, 또 어떤 것을 바라며 살아간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2가지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대자존재 즉, 의식적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즉자존재 즉, 비의식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 말 자체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 시켰다. 삶의 본질이 모두 이 두가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여기서 나는 철학의 다양성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 다시 말하면 대자존재를 추구하는가 즉자 존재를 추구하는가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철학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학과 현실. 이 주제는 책의 첫 부분부터 끝 부분까지 등장한다.「철학은 문학과 어떤 관계인가?」이 책의 첫 구절이다. 답은 철학의 언어는 분석적이며, 문학의 언어는 서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인간과 관련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허준의《동의보감》을 철학적으로 연구해 놓은 부분에 잘 나타나있는데 특히 허준의 스승 유의태의 태도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비인부전, 살신성인'의 정신이 그것이다.

만약 내가 유의태라면 내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산 나를 죽여 제자의 연구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그러나 유의태의 철학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철학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유의태의 인생관에서 그만의 철학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 어떤 책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해'철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철학은 쉬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조차 전부 알지 못하므로… 철학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열심히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내게는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학이 결코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그리고 주변에 대해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혀나간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 나의 경솔한 판단이 무색해졌다. 이제는 배움에 대한 큰 뿌듯함을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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