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자신의 약점이나 불행을 타인에게 드러낼 줄 몰랐고 남에게 동정을 살 바에야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진서야, 모든 사람 마음이 너와 똑같지 않아. 선을 지켜."

"네가 싫은 게 아니야. 그 책이 재미없는 거지. 그건 달라."

모두 내 탓이라고 느끼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

할머니, 이런 게 살아 있다는 거야?

가슴이 저릿할 지경이었다. 마치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타인의 허점이 온 사방에 까발려진 듯한 느낌─언제나 그녀는 자신의 허점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보다 다른 사람의 허점이 그런 식으로 전시될 때 훨씬 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떠나간 곳에 다른 어떤 사람들이 찾아 들어온다…….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 오늘날에 도달했을 뿐이다.

미래는 순식간에 다가와 현재를 점령한다.

늘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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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에로다.

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어서는 아니고 싫어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어서다.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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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사회적’인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접하면서 감정의 어떤 주파수는 진폭이 줄어들고 어떤 주파수는 증폭되는 구조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걸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 지구에서는 해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별에서 태어나 우주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건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부였으니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규정한 것이다. 하늘의 달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이봐요, 이 상태로 지구에서 달까지 간다고요? 저 여기서 좀 내릴게요. 그래요, 지금 당장요. 약은 약사에게, 과학은 과학자에게, 그리고 탐험은 탐험가에게 맡깁시다. 저의 지구력은 지구에서만 발휘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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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소개하는 책 리스트

https://blog.aladin.co.kr/721103187/13051605

읽을 때도 쓸 때도 한결같이 기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 막 하나를 알게 된 사람, 혹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안다고 믿는 사람의 확신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무지하다는 겸손을 상실한 인간의 오만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아이의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는 그러지 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온통 불확실한 가운데 확실한 것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순수한 몰입, 외부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삽질의 조건이다.

쉽게 방전되는 저용량 배터리를 가진 사람에게 외출은 늘 크게 마음먹어야 하는 일이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나면 이미 배터리가 한 칸 소모된 것 같은 이 기분을 어떤 사람들은 끝끝내 모를 것이다.

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낯선 것을 포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마음이 좋다.

그는 모험가인 것이다. 쉽게 이해받기보다는 오해받아도 좋다는 쪽을 선택하는 종류의 모험가. 나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 번 더 살아볼 수 있다. 혹은 누군가를 한 번 더 살아보게 하거나.

가장 좋은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 여기에 잘 어울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는 아닐까.

내가 골몰하는 가난은 부자가 될 수 없어 서글픈 가난이 아니라, 가난해도 괜찮아서 가난하기로 마음먹은 그런 가난이다. 후쿠오카 켄세이가 말했던 덜 벌고 덜 쓰는 자급자족적 삶이고, 헬렌 니어링이 살았던 단순하고 풍요로운 자발적 가난이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아끼는 마음이 자신을 초과하는 사람. 그래서 타인과 타자에 대해 애정과 연민을 느끼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또렷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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