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자신의 약점이나 불행을 타인에게 드러낼 줄 몰랐고 남에게 동정을 살 바에야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진서야, 모든 사람 마음이 너와 똑같지 않아. 선을 지켜."

"네가 싫은 게 아니야. 그 책이 재미없는 거지. 그건 달라."

모두 내 탓이라고 느끼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

할머니, 이런 게 살아 있다는 거야?

가슴이 저릿할 지경이었다. 마치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타인의 허점이 온 사방에 까발려진 듯한 느낌─언제나 그녀는 자신의 허점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보다 다른 사람의 허점이 그런 식으로 전시될 때 훨씬 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떠나간 곳에 다른 어떤 사람들이 찾아 들어온다…….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 오늘날에 도달했을 뿐이다.

미래는 순식간에 다가와 현재를 점령한다.

늘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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