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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1세대의 탄생 - 결혼에 편입되지 않은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
홍재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7월
평점 :
얼마전 동화번역가이자 동네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는 프리랜서 비혼여성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젊은 시절 많은 삽질을 했으나 이제는 비혼으로서 잘 살고 있으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로 늙고 싶다고 했다. 그 책은 아름다운 표지그림과 삽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탐나는 손수건 등의 판촉물, 유명작가의 추천사, SNS 사전서평단의 마케팅에 힘입어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삽질을 했다는 그녀는 수도권의 아파트에 살며 자동차를 몰았고 여행을 다니고 홍차를 사모으고 여유있는 각종 취미를 누렸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그 모든 것을 비혼의 비정규직 그녀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만 성취했을 것 같지 않았다. (만일 작가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면 그 얘기를 써 주는 편이 훨씬 흥미진진했을 텐데.) 작가는 자신의 비혼 결심에 대해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미성년이 보였다. 나는 그 책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중산층 부모를 둔, 어쩌다 보니 결혼을 못하고 나이 먹은 여성이 "맞아, 나 비혼이었지, 그래, 비혼이라고 잘 포장하고 살면 되겠네." 라고 하는 자기 위로 혹은 변명처럼 보였다.
여기 치열하고 핍진한 비혼여성의 삶을 그린 『비혼1세대의 탄생』이 있다. '부모찬스'를 쓰지 않고(또는 못하고) 오로지 저자 스스로의 힘으로 부딪혀 쌓아 올린 민낯의 비혼 생활이 솔직하게 그려진 이 책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그 베스트셀러보다 훨씬 공감이 갔다. 카드 돌려 막기를 하고, 을씨년스러운 고시원 대신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와 집을 구하고,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용기 있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에서 영화 <소공녀>가 보였다.이런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준 한국여성재단도 감사하다. 내가 읽고 싶던 비혼라이프였다.
집밥은 엄마 밥이 아니라 집에서 스스로 해 먹는 밥이다. - P230
제한 없는 소비를 하고 대출을 받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미래의 시간을 빚과 맞바꾸는 행위다. 불투명한 미래가 확실한 빚으로 되돌아온다. - P188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은 자기가 결혼하고 싶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그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P96
개인의 성숙도는 결혼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어도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인 사람을 더 많이 봤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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