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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시계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재밌다. 1989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1부에선 계속 큭큭대느라 숨막혔다. 치밀한 묘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아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연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주인공 매기는 48세의 평범한 아주머니. 그러나 사실 파헤치고 나면 전혀 그렇지만도 않다. 솔직히 어떤 쪽이냐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선행'이라는 것 자체에 미쳐서 진정한 사랑이 있는지, 주위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절대 의심스러울 정도다. 뭐랄까. 선행의 '이미지'만을 철저히 따른다고나 할까.
사실 매우 무기력하고 거짓말쟁이이며(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결과는 늘 안좋다) 그것에 대하여 책망을 들으면 늘 호들갑스럽게 눈물을 글썽이며 '그럴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나는 정말 그들이 잘 되길 바랬던 거라구요.' 식의 변명이나 늘어놓고 말이지. 긍정적인 면에서는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과도 닮아있다. 맹목적인 '사랑'이라 일컫는 것. 그러나 부정적으로 그것은 '사랑도 뭣도' 아니다. 그저 그녀의 짐승같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었을 뿐. 물론 '본능'이라는 말이 적절치 않을지 모르나 그녀에겐 '본능'에 가깝다.
나에겐 그의 남편 '로우러' 쪽이 더 공감이 갔다. 물론 그가 중심이 되는 2부는 그리 웃을 만한 것이 없었지만, 자신의 꿈을 접고 철저히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산 그래도 어느 것 하나에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간단히 말해 매기와는 완전 반대인 그 쪽이 더 좋았다. 하지만 아무도 로우러를 칭찬해 주지는 않는다. 그 또한 그의 행동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 않는다. '길버트 그레이프' 처럼 말이지.(로우러에게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와 정신박약인 누나와 대인공포증을 앓는 누나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떠나야 자신을 찾게 되는 셈이지만(길버트 처럼) 역시나 길버트도 집이 불타고 어머니가 죽어야 하는 그런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로우러의 경우라면, 그의 아버지는 죽지도, 집과 가게는 좀도둑조차도 들지 않았다.)
매기에겐 '아주머니, 결국 무엇이 남았나요?'라는 말과 로우러에겐 '그래도 괜찮은 인생이었나요...?'라는 질문을 꼭 해보고 싶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은 단 하루 그것도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이지만 작품 해설에 나왔던 대로 그들 모두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하루 이야기를 한 권으로 썼으니) 어색하거나(많은 사람들의 일생을 한권으로 줄여놨으니)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진심으로 탁월하다.
한국어판 제목이 된 '종이시계'(저자가 직접 변경했다고 한다)를 내용중에서 찾는 것도 재미있다. 종이시계에 대한 매기의 말이 이 책의 모든 것들을 나타내주고 있는 듯.
영화로도 나왔다던데, 제목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