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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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상처, 거기에 또 다시 덧난 상처와 진물…. 그리고 자기 합리화와 고립된 자아와의 싸움, 외로움, 잃어버린 인생…. 박경화 작가의 소설을 무어라 정의 내려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나열한 모든 말들이 각 단편 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에게 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가을몽정>, <어항>, <딤섬>, <스무개의 담배>,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태엽감는 여자>, <현실은 비스킷>,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 이렇게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만을 훑었을 땐 매 단편마다 신선하고 새로운 것이라 여겼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마치 한 권의 소설집을 읽은 듯 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만큼 모든 이야기들이 연계되어 있었고,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듯, 마치 매 단편 속의 주인공의 한 사람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현실은 비스킷>만 제외한다. 이 단편만이 유일하게 남자 주인공이었으므로 별개로 여겨졌다.)



<가을몽정>의 그녀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우연찮게 다가온 중년의 남자와 사랑 아닌 사랑(?)을 하며 자기합리화를 동반했고, <어항>의 그녀는 알코올 중독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과 떨어져 홀로 뱃속의 아이를 키우며 옆집여자와의 미묘한 갈등과 스스로의 심리적 압박을 느꼈고, <딤섬>의 그녀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동시에 스스로의 안식처를 꿈꿨으며, <스무개의 담배>의 그녀는 지긋지긋한 일터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알게 된 남자와 지독하게도 고독한 인생의 쓴 단면을 나누었고,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의 그녀는 구식의 수선 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위해 내조했던 어머니의 상처, 그리고 그 위에 덧붙여진 그녀의 상처가 돋보였고, <태엽감는 여자>의 그녀는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딸을 버려둔 채 이혼하고 나섰지만 결국엔 스스로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 채 상처만 입는 꼴에 처하고 말았고, <현실은 비스킷>의 ‘그’는 1년 동안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사장의 집을 찾아가지만 결국 받지도 못한 채 빚더미에 앉은 채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무능력한 가장이 되어버렸고,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의 그녀는 집에서 나와 몸을 파는 인생으로 전락해 늘 아픔에 시달리고 만다. 이처럼 모든 단편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아픔과 고통, 슬픔을 동반했고 이는 내게도 쓰디쓴 이면적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나 나를 동하게 만든 것은 <가을몽정>과 <딤섬> 그리고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과 <태엽감는 여자>였다. 사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 것이 없었지만, 유독 이 작품들만큼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온통 가슴을 먹먹하게 물들인 동시에 쓰라린 아픔을 느끼게 했다. 과연 무엇 때문에?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이는 나 또한 그녀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거나 혹은 동정심을 느꼈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자기합리화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이기적인 해결책이자, 자기 스스로에게는 약이 되는 법이다. 이것만큼 편리한 것이 또 있을까. ‘그녀’처럼 생각해보자. 나에게는 약혼자가 있지만 상대방 측에서 일체 그런 것은 묻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대답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대답해주지 않는 것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곤란한 질문을 피해가는 것이 관계의 미학이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손쉬운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세상에 모든 관계와 감정이 이처럼 자기합리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무엇 하나 진실하고 올바른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나 역시도, 그리고 당신 역시도 심심찮게 저지르고 있는 꽤나 좋은 방법임은 확실하다.



각 단편 속 그녀들과 그는 딱히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다른 대체로 불리거나 혹은 그것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양상은 그들의 정체정과 자아를 의심케 만드는 것이었고, 때문에 나조차도 혼동스런 자아를 경험하며 그들을 위태롭게 바라보아야 했다. 인생의 단면 중 유독 아프고도 쓴 단면 속에서 신음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너무 빠르고, 급하게 사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과연 그들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이미 그것은 우리에게도 있는 모습일 것이다. 지독히도 현실을 꿈꾸고 그 현실 속에서 소통하게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동시에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에게 있어 자아와 정체성, 인간관계의 진면목, 감정의 소통 등 다양한 바를 시사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먹먹한 가슴으로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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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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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두께는 상상 외로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완독하리라 마음먹은 뒤에도 다소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라는 책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책 내용 또한 금세 읽혀 질만큼 쉬운 것 역시 아니다. 어쩐지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해 보여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 역시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책이라는 글자에 반가운 기운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중에는 역시나 책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단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혹은 그들의 사상이나 이상적인 면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귀중한 책을 학살시킬 정도로 대단했던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주변의 지인 중에는 책의 겉표지마저 상하는 것이 싫어 손수 커버를 만들어 씌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이 구겨지는 것이 싫어 책을 보는 순간에도 책을 조심히 다루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책에 대한 애정은 여러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책을 불태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외려 책 욕심이 많은 내게는 수많은 책들이 활활 타오르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뿐이었다.



이 책은 1장에서 3장까지는 libricide, 즉 책의 학살을 비롯해 각종 이론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으며, 4장부터 8장까지는 다섯 가지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나치가 유럽에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중국 문화혁명기에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에서 책을 학살한 사건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결론을 도출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잘 배치되어 있다. 역자의 서문에서 역자는 4장에서 8장까지의 사건부분을 먼저 읽고 1장에서 3장까지의 이론부분들로 남은 공백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9장의 결론을 읽는 방법도 괜찮을 것이라 제안한다. 난 이런 친절한 제안에 적극 동의를 표했고, 그렇게 읽는 방향을 맞춰갔다. 역자의 서문은 처음 이 두꺼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느꼈던 두려움 내지는 걱정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책 내용에 접어들기 전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 때문에 다소 안도감마저 들었다.



20세기 엄청난 책 파괴. 책은 과거를 비춰주고, 조명해주기 때문에 정치적인 색채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상관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책의 학살은 불가피하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책의 학살은 빈번하게 이루어져 왔고, 이는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고대에는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가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는 고대 정치에는 종교가 분리되어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인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였고 정치적인 이유가 종교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고대 책 학살의 내용을 살펴보면, 왕권이 바뀌고 새로운 체제가 도입되면 기존의 책은 불태워져야 했고, 또는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백성을 교묘하게 다스리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책을 불태우는 자들 가운데는 무조건적으로 책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책을 불태움으로 해서 찬양의식을 드러내는 독특한 경우도 있었다.



각종 사상과 이념의 대립, 혹은 자신들의 관념을 위해 저질러야 했던 책의 학살은 과연 타당한 일일까, 아니면 부정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한 일일까. 아무쪼록 현재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부정한 것도 과거의 사상이나 배경으로 해석해야 할 것도 없다. 바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후대로 물려줘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 책이다. 책만큼 우리의 많은 지식을 대변해주고, 우리의 삶 그대로를 이야기해주는 것도 없다.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 하는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더 이상의 책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여러모로 생각의 깊이를 넓혀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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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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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의 각기 다른 특색과 매력을 담은 감성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내 설렜고,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한 여자는 글로 자신의 감성을 이야기했고, 두 여자는 그림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 그 중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쪽은 그림이다. 여러 다양한 여자들의 얼굴을 표현한 그림들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아름다웠고, 독특했다. 특히나 평소 얼굴에 대한 그림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더욱이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림 속 그녀들의 시선은 늘 다른 무언가를 내게 이야기하는 듯 했다. 때론 즐거워 보이기도 했고, 때론 슬픔에 사무쳐 어두운 기색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그녀들의 시선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그녀들의 감성과 내 감성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에 묘하게도 감성이 풍족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했다.  


이 책은 1부: 상처, 2부: 이해, 3부: 성숙으로 이루어져있다. 상처에 담긴 글들이 유독 내게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켰다. 어머니의 뒷모습이랄지, 내 마음 속 상처의 흔적이랄지, 아니면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투정이나 꿈에 대한 욕심 혹은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의 모호함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이랄지, 사랑의 쓴 단면이랄지…. 잊고 지냈던 참 다양했던 내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다시 꺼내어볼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었고, 또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혹은 해야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깨달음도 주었다.  


여기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가슴 두근거려 뛰쳐나가고 싶은 꿈은 무엇입니까?, 누가 뭐라 해도 달려가고 싶은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내게 질문한다. 예전 같았으면 서슴지 않고 당당하게 내 미래에 대한 목표나 꿈을 끝도 없이 나열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전혀 그러하지 않다. 문득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그 친구에겐 다양한 꿈이 있었다. 얼른 대학을 졸업해 하고자 하는 목표! 하지만 이젠 그렇게 녹록찮은 현실을 맛본 뒤로는 점차 모멸감을 느낀 듯 했다. 때문인지 누군가 그 친구에게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그 친구는 늘 멍한 표정을 짓곤 한다. 아무런 말이 없이. 꿈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가. 꿈은 늘 내가 나아갈 수 있는 버팀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것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꿈이 없으면, 더 이상 내가 나아갈 곳은 없는 것이다. 그저 현재 그 자리에 안주해도 좋다. 꿈이 없는 나약하고 가여운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현실과 타협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우면서도, 그것이 내심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자 인생이라 치부해버릴 때면 스스로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어진다. 분명 내 꿈은 이게 아닌데…. 그녀들의 감성과 함께하는 내내 나는 어쩌면 다시금 날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두려움도, 겁도, 현실도피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여겼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인생에 나아갈 목적지가 있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들뜨고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금 예전 품었던 그 열정으로 꿈에 도전해보려 한다. 늘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많은 것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 그때의 그 아름다웠던 두근거림을 난 여전히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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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
아리안 부아 지음, 정기헌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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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늘 내겐 익숙지 않은 것이었고, 그것은 나를 포함한 내 측근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이 죽음이라지만, 어쨌거나 나는 어느 한 군데 아프지 않은데다 젊은 나이인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내게 감흥을 줄 수 있느냐는 거다. (갑작스런 사고는 늘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제외한다.) 또한 내 형제들과 부모님들에 대한 죽음 역시도 마찬가지다. 사실 최근에는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만약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하고 말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파오는 것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느꼈던 기분 나쁜 감정 또한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스무 살, 어린 청년 ‘드니’의 죽음. 피에르와 로라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으로, 디안에게는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알렉상드로에게는 사랑하는 형에 대한 죽음으로, 친구들에게는 함께했던 추억을 빼앗기는 죽음으로… 드니의 죽음은 드니의 관계 선상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유형을 선보이게 된다. 말 그대로 죽은 자 다음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은 저 마다의 방식과 모습으로 보여 지게 되는 것이다. 슬픔을 이겨내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모습은 그 만큼 눈물겨웠고, 힘겨워보였다.



피에르는 어린 대학생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익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그 기분을 만끽하는 것으로 슬픔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자식과 부인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그녀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라는 백화점 등 다양한 곳에서 대범하게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스릴을 만끽하며 삶의 활력을 느끼려 한다. 디안은 늘 새로운 낯선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며 슬픔을 잊으려 하며, 점점 퇴락해져 간다. 알렉상드로는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등 적응을 하지 못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 불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처럼 한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남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불러왔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변화는 절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제각기 슬픔을 추스르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감정과 도무지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정에서 비롯된 대체일 뿐이다.



문득 한 가족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어둑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만약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겪는 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려 노력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디안처럼 방탕한 삶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려고 노력할까. 아니면, 그 슬픔을 만끽하며 한껏 우울하고 슬픈 사람으로 전락해 버릴까. 그 어느 것도 정당하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처럼 버거운 것이다. 그것이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말이다.



글 속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다른 타인의 죽음이라면 그저 그 상황에 놓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며, 적어도 그것이 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토록 가슴 아프게 슬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온전히 타인의 죽음일 뿐, 내게 뼈저리게 깊게 파고드는 죽음과는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한, 그런 추억과 기억은 죽을 때까지 내내 내 속에 자리한 채 아름답게 빛날 것인데, 그 추억 속에 함께 빛나야 할 주인공이 사라지고 없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말이다. 그것은 그 추억마저 없었던 허구에 지나지 않게 만들고 애초에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남겨진 사람들… 죽음은 이토록이나 사람을 슬프고 아프게 만든다. 늘 사람은 죽음과의 연장선상에 머무르며, 결국에 죽음이라는 도착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좀 더 죽음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감정이 허락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본질적인 죽음과, 죽는 이,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에 짙은 생각과 슬픔을 덧붙여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여운이 담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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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 2012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실비아 브라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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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누구나 한 번쯤 세계가 멸망하고,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래서 인지 유달리 ‘투마로우’와 같은 재난 혹은 재앙이라고 불릴 법한 영화에 집중을 하게 되고, 천재지변과도 같은 사건이 터지면 더욱 신경을 예민하게 세우곤 했던 것이다. 그것이 굳이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런 재앙은 사람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예언가이자 영매로 유명한 실비아 브라운의 <종말론>은 이 시기 우리가 궁금해 하는 내용이나, 의문점 혹은 불안과 혼돈을 차례로 정리해주고 있다. 유명한 2012년 마야력부터 익히 들어왔던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그리고 각 종교에서 제시되고 있는 종말론과 예언가들로부터 전해지는 종말론, 그리고 문명에서 이루어졌던 종말론과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종말론 등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오던 종말론의 총체적인 집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부터 온 몸을 감싸고도는 호기심과 궁금증, 혹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은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나 다소 힘이 빠지는 내용들 때문인지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내용들이었다.



최근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갑작스런 폭설이 발생하는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지진이 발생하는 등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종말론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더 대두되는 것 같다. 종말론에 대해 무심, 혹은 어느 정도 절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의 한 지인은 “어차피 2012년이면 끝나는데, 인생 좀 즐겁게 살자.”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네기도 하며, 갑작스런 천재지변을 본 뒤로는 “정말 꼭 세상이 종말 할 것 같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건네는 이도 있다. 사실 종말론에 대한 가설 또한 정해진 기준이 모호하고, 확연한 결과물이 내보여지지 않는 한 누구나 쉽사리 믿기 힘들며, 그러한 종말론에 묶인 채 인생을 허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정말로 인생이 2년 후 종말을 맞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열심히 힘들여 일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기 전 해보고 싶었던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거나, 그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던 짝사랑하는 이에게 고백을 하거나, 어찌됐든 2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다들 무언가를 하려 안달이 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종말은 도래하지 않았고, 현재 제기 된 종말론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정당화된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정말 종말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전히 제기되어 오는 종말론을 어쩐지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러한 종말론을 두려움이나 공포로 인식하기보다 외려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로 인식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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