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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요 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라 단언하고 싶다. 뭐랄까, 내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동시에 감탄을 연발하게 했고, 그 만큼의 애정을 갖게 해주었다. 사실 강영호님의 사진은 소소하게나마 접한 적이 있었지만, 김탁환님의 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존재들이며 무한한 창의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투영된 이 책을 보면서 어쩌면 두 사람의 사유가 이렇게 잘 어우러져 있을 수 있을까 싶어 짐짓 놀라우면서도 크게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낸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상대성 인간, 인간인간인간, 반딧불이 인간, 웨딩 인간, 끈적 인간, 아몬드 인간, 알바트로스 인간. 이 일곱 인간들 중 내 구미를 확 당기며 무한한 매력으로 날 끌어당긴 인간은 상대성 인간과, 인간인간인간이었다. 인간들 모두 제각기 특별한 매력이 있었고, 그 독특하고 괴기한 어둠이 날 설레게까지 했다. 특히나 상대성 인간은 우리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대성이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 혹은 얼마나 혐오스럽고 끔찍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늘 홍대를 자주 드나들곤 한다. 유독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늘 홍대는 예외였다.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한껏 짜증이 솟구쳐도 홍대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난 홍대의 그 자유분방함과 어두운 낭만, 혹은 허무한 분위기가 좋다. 밤의 거리이기도 한 홍대는 이상하리만치 괴팍한 나조차도 관대해지게 만들곤 했다. 그런 홍대의 밤거리를 누비고 다닐 상대성 인간을 생각하니 뭔가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다.
인간인간인간은 사진을 마주하자마자 묘하게 인상을 구기게 되면서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지하철로 뛰어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을 기관사. 그들의 죽기 전 눈빛을 마주쳤노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오금이 저렸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싶다. 또한 의도하지 않은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한 노릇이랴.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관사의 배 위로 떠오르는 죽은 자의 얼굴은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소재인데다 완벽한 것이었다. 간혹 지하철을 탈 때면 뛰어들었을, 혹은 뛰어들 사람들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상상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인지 인간인간인간은 내게 있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아랫도리를 들췄는데 하루는 눈썹이, 하루는 코가, 하루는 입이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움직이지는 않되 누군가가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참을 수 있을까.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 얼굴이 말까지 하고 움직이기까지 하는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면, 매력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하늘공원에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인지 반딧불이 인간을 읽으며 다시금 하늘공원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다시금 하늘공원을 찾는 날이 온다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휙휙 둘러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만큼 이 책들은 내게 있어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벅찬 여운을 안겨주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인간들은 어딜 가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통에 난감할 지경이다. 한동안은 이 책의 여파가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 만큼, 서울의 인간들은 넘쳐날 정도로 충분하니 말이다. 비단 나를 포함해서.
이 책의 묘미는 글과 사진의 합리적인 조화에 있다. 그래서 인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인간들은 어떤 모습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떨려온다. 김탁환, 강영호의 신선한 상상력이 발휘된 이 책은 더 없이 훌륭했고, 이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 인간들은 여전히 우리네 곁에서 함께 하고 있고, 나 또한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없게 만드는 피할 수 없는 만남인 것이다. 지극히 행복했고, 설레고, 아름다웠고, 비극적이었던 또 다른 인간들과의 만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