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책의 겉표지를 딱 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한 여성의 일러스트였다. 사뭇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이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워낙 보테로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동통한 다리가 딱 보테로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핑크빛 색채 속에 놓인 여성의 일러스트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등장하는 비극. 서해대교의 비극이 떠올랐다. 이는 대구 지하철 참사 못지않게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여전히 우리네 기억 속에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나 그 사건에 가족이나 그 밖에 관련 된 누군가가 있었다면 더할 수 없는 충격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 희뿌연 안개 가득한 도로 위에 미령과 현욱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고 속에서 결국 현욱은 그녀를 뒤따라가지 못한 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야 만 것이다. 미령이 실려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현욱의 피로 얼룩진 얼굴이 내게도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그 눈빛은 자신의 마지막을 이미 깨달았던 것일까. 괜히 울렁이면서 속이 아리는 통에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사실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태껏 장례식장이라는 곳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지인은 아니었지만, 회사 일로 알게 된 분이 모친상을 당하셨다고 하여 사장님과 함께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가봤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나는 장례식장의 입구에서 기다렸고, 사장님 혼자 들어가셨다.) 최근 이상하리만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래서 인지 죽음과 관련된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두루두루 읽기 시작했다. 늘 죽음이라는 것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인지 그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신종플루로 인해 갑작스럽게, 혹은 쉽사리 죽음을 피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각종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의 죽음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지 현욱의 죽음 또한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죽음은 우리네 삶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다만, 죽음과 삶이 닿아 있는 거리의 차이일 뿐,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을 살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굳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에 대해 자각과 인지를 하고 나니 그저 인생이라는 것이 달리 보였던 것이다. 최근 아는 지인과의 이야기 도중 죽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내일 죽는다 해도 안타깝지 않을 만큼 그렇게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지인의 모습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 같아 보였다고 할까.



목욕탕이라고 하는 것은 몸을 깨끗하게 씻기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발가벗은 사람들만이 입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온통 발가벗은 사람들 틈으로 발가벗은 몸을 하고 들어갈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온 치부를 드러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내 온전한 모든 것을 감춰주던 것을 버리고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그래서 일까. 목욕탕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다소 인간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 속 단면이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목욕탕 때밀이 일을 하는 복남의 시선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이 친숙한 동시에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오래 전 동네 과부와 바람난 남편이 집을 나가고 혼자 현욱을 키웠다. 미령과 사고를 당한 뒤 결국 먼저 가버리고 말았지만. 그리고 호순은 미령의 엄마로 늘 그녀의 말은 과장되거나 부풀려진다. 굉장히 앞뒤가 맞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수긍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복남, 호순, 미령. 그렇게 과부인 세 여자가 이 소설의 중심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이 바로 목욕탕이다. 서로 간의 차오르는 분노, 그리고 느껴지는 동질감 내지는 동정. 그녀들은 애증의 관계 속에서 점차 서로를 이해하며 의지하게 된다.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비록 내가 과부가 아닐지언정, 같은 여자로써의 감정적인 면이라고 해야 할까. 적나라하게 스스로를 내보이는 목욕탕 안에서 그녀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네 삶이자, 스스로의 삶이 아닐까.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글에 목욕탕이라는 신선한 배경이 등장하면서 색다른 매력을 담아낸 글이었다. 최근, 에세이집에 몰두하느라 소설책을 많이 보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김지현’이라는 작가의 글 또한 처음 접하다 보니 새로움과 흥미를 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쪼록 내게 있어선 많은 생각들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글이었다. 또한 이처럼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글이었다. 이제부터 목욕탕을 찾게 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이 글을 떠올리며 탕 안에 앉아 있을 그녀들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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