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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포토 - 상상을 담는 창의적 사진 강의 노트
크리스 오르위그 지음, 추미란 옮김 / 정보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시는 말 줄이기가 아니다. 훌륭한 시는 말을 줄여 단순화하고 거기에다 깊이를 더한다. 늘 더 많이 주는 것이 시다. 시는 소박하다. 시는 작은 공간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증류가 필요하다. 의미와 집약과 효력의 증폭이 요구된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남은 소금처럼 그 남은 몇 줄이 더 많은 얘기를 한다. 요지는 내가 본 최고의 사진들도 같은 궤도를 걸었다는 것이다. -20쪽
시와 마찬가지로 사진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상상력이 빈틈을 채워준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유혹적인 말이었다. 이는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내가 사진전이나 그림전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에서 연유한다. 한정되어 있는 프레임 안에 담긴 것이 내게 영감을 주고, 그 영감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호기심은 상상력을 끌어당기고, 다시금 그 상상력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의 깊이를 꽉꽉 채워주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 시나 사진과 같은 작품들은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저자가 말하듯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가. 내게 있어 예술은 그런 것이다. 차갑게 굳어있는 감정과 감각을 일깨워 뜨겁게 들끓게 한다. 때문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시회를 찾는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좋다. 작품을 보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고, 아는 척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기분은 그야말로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낑낑대는 기분이다. 그저 그 작품을 보며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그 상상이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내 감각과 감정을 일깨워주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 가득한 일이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을 복잡하고 뒤엉켜 생각하는 것은 어쩐지 예술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사진 역시 갇힌 공간 안에 담긴 모습을 보며 그 밖의 모습을 궁금케 하고, 그 포착된 순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을 매료시킨다.
보는 법을 배우면 새로운 관점으로 삶에 접근하고 세상의 놀라움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각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바로 지금이 그 특권을 향유하고 확장할 때이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새롭게 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그 잠재성을 발견하는 일은 당신을 더 나은 사진가로 만드는 것은 물론 어쩌면 당신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60쪽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바라본다. 하루에도 수많은 프레임을 시야에 담는다. 그 중에는 사라지는 것도 있고, 오래도록 기억의 잔상에 남는 것도 있다. 많은 것을 바라보지만 그 바라보는 것 역시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예술가들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있는 듯 하다. 같은 것을 보아도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제각각이듯, 모두에게는 새롭게 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듯, 그 잠재성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고 더 나은 사진가로 만드는 일이다. 세심한 관찰력과 집중력이 그 잠재성을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다. 늘 많은 것을 보고 담아내고, 그 안에서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노력하기보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보는 것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애정을 담아낸다면 그 잠재성에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늘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각양각색의 찬란한 빛깔에서부터 회색빛 건물, 스쳐가는 사람들의 색다른 표정과 옷차림, 푸른 바다와 지는 노을의 붉은 아련함까지. 바라보는 모든 것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사진으로 담아낸다면 좀 더 아름다운 사진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소울 포토>는 chapter001에서부터 chapter012까지 이어진다. 사진의 상상력과 창조적 사진, 보는 법과 렌즈와 사진의 구도, 카메라의 사용법과 인물, 결혼, 여행 사진 찍기와 프로 사진작가가 되는 길까지. 먼 여정을 차례차례 설명해 준다. 렌즈 부분에서는 좀 더 세세한 설명과 추천 렌즈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사진에 있어서는 부족한 초보자로써 렌즈 고르는 일이 꽤나 만만찮았던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사진과 카메라, 그 밖의 전체적인 부분을 즐기기에 편안한 책이었다. 더불어 실질적인 부분보다 사진가로써의 모습과 사진에 대한 감정적인 깊이가 담겨 있어 좋았다. 많은 부분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다소 좋은 사진만을 찍으려 했던 강박관념을 철저하게 없애주었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이야기는 굳이 사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혹은 인간관계나 그 밖의 많은 부분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라 좋았다.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 국한된 이미지 속에 수없이 풍부한 상상력이 숨어 있었다. 최근에 사진 찍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화된 것이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주변의 일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며 담아내는 일. 이 책을 통해 사진의 매력에 더 흠뻑 빠진 것만 같다. 보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