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시간들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열차가 다음 역을 향해 달리는 동안 마틸드는 몸을 안쪽으로 더 밀어 넣었다. 몇 센티미터를 더 확보하고, 내렸다 타지 않으려고 꿋꿋이 버텼다. 절대 놓아선 안 된다. 공기는 포화 상태다. 사람들의 몸은 조밀한 하나의 지친 덩어리로 융합되었다. 웅성거림은 침묵에 자리를 내주었고 사람들은 다들 힘든 걸 꾹 참는다. 턱은 열린 창문을 향해 올라가고 손은 버팀목을 찾는다. -66쪽
 
빽빽하고 무질서한 인파에 밀려 도시는 언제나 자신의 리듬, 자신의 분주함, 자신의 통행 시간을 강요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시는 외로운 길을 가는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공간이나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 외에는. -268쪽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도시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교차로들이 끝없이 펼쳐진 땅”은 사랑과 인연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지하철에서, 자동차 안에서 ‘지하의 시간’,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두 주인공을 도시는 포로로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275쪽, 옮긴이의 말
 



도시의 습한 기운과 끈적끈적한 찝찝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한 때는 도시의 북적이는 활기와 화려함에 동경을 품기도 했더랬다. 그야말로 반짝 빛나는, 꿈의 도시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다양한 곳을 향해 오고가는 모습들에 사람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때론 그들을 바라보며 다양한 추측과 가늠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도시의 이면을 마주하고 나면 그때의 그 감정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도시는 화려하게 겉치장을 하고 있지만, 속내는 그야말로 썩어문드러졌다. 가슴 속을 깊게 후벼 파는 고독과 외로움에 치가 떨리는 곳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오고가며 마주치지만, 그 뿐이다. 한 순간 스치고 마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사람들일뿐 이름과 다양한 취향들을 공유할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미비하다. 그렇게 습하고 어둑한 도시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도시에서 가장 기분이 나쁜 곳은 지하철이다. 어디든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동반한 그야말로 고독한 곳이다. 출퇴근 지하철은 정말이지, 지옥을 방불케 한다. ‘지옥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리라. 많은 사람들의 틈에 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황상태에 휩싸인다.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참기 힘든 이기심과 무표정이었다. 특히나 퇴근시간에 느껴지는 그 묵직함은 절로 나까지 그 묵직함에 눌려 쓰러질 지경이었다. 늘 불쾌한 침묵이 동반하고 간혹 그 침묵을 가르는 시끄러움 역시 불쾌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엇하나 즐겁지 않은 공간이다. 그래서 인지 <지하의 시간들>에서 비유하는 지하철 속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외려 지나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지하의 시간들>은 한 남자 티보, 한 여자 마틸드의 독백을 교차해 가며 보여준다. 같은 도시 아래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으며 사람 사는 인생이 어쩜 이다지도 거기서 거기일까 싶어 씁쓸함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음을 알고 이별을 통보한 뒤 후에 올 일상생활 속의 변화와 아픈 감정 역시, 세 아이의 엄마로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했지만 한 순간의 직장상사와의 트러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마틸드의 가여운 감정 역시. 모든 것이 우리에겐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읽는 내내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나 역시 씁쓸하고 고독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무덤덤한 듯 이어지는 일상생활을 무덤덤하게 써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이야기가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인지 나 역시 무덤덤한 감정으로 그들의 행방을 함께 따라갔던 것 같다. 처음 접하는 작가이지만 유독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또 하나의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마주한 것 같아 두근거리는 시간이었다.
늘 인생의 특별함을 바라며 상상하고 꿈꾸고, 그 꿈속에서 웃음 짓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꿈들이 짓밟힌 게 아니라 내 순수했던 감정들이 짓밟혀 탁해졌다. 도시에 물들고 점점 더 도시 속으로 나아갈수록 환하게 밝혀주던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회색빛 도시 속에서도 꿈은 존재한다. 이 책은 한층 우울하고 고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다시금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고독한 지하철 속에서 티보와 마틸드가 서로를 인식했듯이 말이다. 어쩌면 역자의 말처럼 도시는 운명의 인연을 가로막는 존재일지 모른다. 운명의 존재이지만 그 장애물이 서로를 스쳐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쳐지나감조차 운명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티보와 마틸드의 후의 행방은 내 상상 속에 펼쳐지고 말테지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같은 결말을 상상하며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제왕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통지아위 지음, 정우석 옮김 / 꾸벅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라는 막이 내리지 않는 연극에서 제왕은 과거 오천 년간 유일한 주인공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수많은 제왕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함무라비, 알렉산더 대왕, 진시황, 칭기즈칸 등과 같이 단연 친숙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에슈코 1세, 사를마뉴 대제, 클로비스 등과 같이 상당히 낯선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쪼록 과거 오천 년을 통틀어, 것도 전 세계를 통틀어 100명의 위대한 제왕을 뽑는 일이 결단코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더더욱 그래서 인지 이 100명의 제왕들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처음 이 책을 펼쳐 시작한 일은 목록에 채워진 100명의 제왕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일이었다. 반 이상을 훌쩍 넘는 많은 이들의 이름이 낯설고 어색했다. 친숙한 이름을 만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반가운 기색이 들었고, ‘역시’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제왕들도 상당수였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역사를 상당히 좋아했다. 역사의 순간순간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을 바탕에 둔 사건들과 인물들이었고, 그들이 이뤄낸 많은 일들이 존경스러웠고 때론 안타까웠다. 때문에 그 사건 하나하나를 파헤치며 연관지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관심사는 역사적인 사건들이었지, 인물에 있지는 않았다. 인물에 관심을 가진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미비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알법한 유명한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 당시 새로운 설렘과 기대감에 더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제왕은 앞서 책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주인공이었다. 단연 독자적인 집권자로 군림했고, 상당 수 많은 업적을 남겨 앞으로도 그 이름은 대대로 전해질 것이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그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있는 그대로에서 서술하려 했다는 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당시의 문명 체계 확립과 발자취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와 곁들여 함께 해주는 사진으로 이해를 돕고 있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해갔고 그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정복하기 위해 싸워야 했고,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반복되는 흥망성쇠와 역사적 변모, 제왕을 통해 변화해 가는 흐름들을 살펴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물론 이 책에 선별된 100명의 제왕을 제외하고도 뛰어난 제왕은 많을 것이다. 더욱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인물이 얼마나 많을까. 역사는 알려진 부분보다 감춰지거나 묻혀버린 부분이 더욱 많아 늘 호기심을 품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최근 역사적인 부분으로는 책이나 그 밖의 다른 매체도 접하지 않아 조금씩 무뎌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살아 숨 쉬는 역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제왕은 지나온 역사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나온 역사가 있었다. 그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울 포토 - 상상을 담는 창의적 사진 강의 노트
크리스 오르위그 지음, 추미란 옮김 / 정보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시는 말 줄이기가 아니다. 훌륭한 시는 말을 줄여 단순화하고 거기에다 깊이를 더한다. 늘 더 많이 주는 것이 시다. 시는 소박하다. 시는 작은 공간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증류가 필요하다. 의미와 집약과 효력의 증폭이 요구된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남은 소금처럼 그 남은 몇 줄이 더 많은 얘기를 한다. 요지는 내가 본 최고의 사진들도 같은 궤도를 걸었다는 것이다. -20쪽  



시와 마찬가지로 사진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상상력이 빈틈을 채워준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유혹적인 말이었다. 이는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내가 사진전이나 그림전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에서 연유한다. 한정되어 있는 프레임 안에 담긴 것이 내게 영감을 주고, 그 영감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호기심은 상상력을 끌어당기고, 다시금 그 상상력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의 깊이를 꽉꽉 채워주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 시나 사진과 같은 작품들은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저자가 말하듯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가. 내게 있어 예술은 그런 것이다. 차갑게 굳어있는 감정과 감각을 일깨워 뜨겁게 들끓게 한다. 때문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시회를 찾는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좋다. 작품을 보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고, 아는 척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기분은 그야말로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낑낑대는 기분이다. 그저 그 작품을 보며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그 상상이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내 감각과 감정을 일깨워주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 가득한 일이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을 복잡하고 뒤엉켜 생각하는 것은 어쩐지 예술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사진 역시 갇힌 공간 안에 담긴 모습을 보며 그 밖의 모습을 궁금케 하고, 그 포착된 순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을 매료시킨다.  



보는 법을 배우면 새로운 관점으로 삶에 접근하고 세상의 놀라움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각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바로 지금이 그 특권을 향유하고 확장할 때이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새롭게 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그 잠재성을 발견하는 일은 당신을 더 나은 사진가로 만드는 것은 물론 어쩌면 당신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60쪽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바라본다. 하루에도 수많은 프레임을 시야에 담는다. 그 중에는 사라지는 것도 있고, 오래도록 기억의 잔상에 남는 것도 있다. 많은 것을 바라보지만 그 바라보는 것 역시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예술가들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있는 듯 하다. 같은 것을 보아도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제각각이듯, 모두에게는 새롭게 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듯, 그 잠재성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고 더 나은 사진가로 만드는 일이다. 세심한 관찰력과 집중력이 그 잠재성을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다. 늘 많은 것을 보고 담아내고, 그 안에서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노력하기보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보는 것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애정을 담아낸다면 그 잠재성에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늘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각양각색의 찬란한 빛깔에서부터 회색빛 건물, 스쳐가는 사람들의 색다른 표정과 옷차림, 푸른 바다와 지는 노을의 붉은 아련함까지. 바라보는 모든 것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사진으로 담아낸다면 좀 더 아름다운 사진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소울 포토>는 chapter001에서부터 chapter012까지 이어진다. 사진의 상상력과 창조적 사진, 보는 법과 렌즈와 사진의 구도, 카메라의 사용법과 인물, 결혼, 여행 사진 찍기와 프로 사진작가가 되는 길까지. 먼 여정을 차례차례 설명해 준다. 렌즈 부분에서는 좀 더 세세한 설명과 추천 렌즈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사진에 있어서는 부족한 초보자로써 렌즈 고르는 일이 꽤나 만만찮았던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사진과 카메라, 그 밖의 전체적인 부분을 즐기기에 편안한 책이었다. 더불어 실질적인 부분보다 사진가로써의 모습과 사진에 대한 감정적인 깊이가 담겨 있어 좋았다. 많은 부분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다소 좋은 사진만을 찍으려 했던 강박관념을 철저하게 없애주었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이야기는 굳이 사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혹은 인간관계나 그 밖의 많은 부분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라 좋았다.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 국한된 이미지 속에 수없이 풍부한 상상력이 숨어 있었다. 최근에 사진 찍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화된 것이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주변의 일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며 담아내는 일. 이 책을 통해 사진의 매력에 더 흠뻑 빠진 것만 같다. 보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들렀다가 알랭 드 보통의 작품 중 우연찮게 발견한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이곳저곳 묻은 채 짙게 변한 종이와 낡은 책장이 너덜해진 책. 그때까지만 해도 알랭 드 보통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고, 그렇게 우연찮게 집어 들게 된 책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심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는 자칫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아리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읽어내려 갈수록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고, 나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사랑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인 부분을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탄성을 자아냈다. 이번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역시 그랬다. 기존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우리는 사랑일까’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감정적인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면 이 ‘너를 사랑한다는 건’ 오로지 ‘나’의 입장에서 ‘그녀’를 서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더욱이 전 여자 친구에게서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 당신을 파악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결별선언을 받게 되면서 새로운 여자 친구에 대해 ‘전기’를 쓰는 일로 시작한다. 그 전개방식이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신선해 구미를 당겼다. 이 책의 새로운 점은 이 ‘전기’마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에서 해석되어지고 진행되어 간다는 점이다. 온전히 ‘나’의 시선을 통해 유추된다. 더욱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평범한 여자의 ‘전기’를 쓰는 일 역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보통 이성 간의 만남 사이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나’를 생각한다. 남에게 비춰질 내 모습. 그리고 그의 물음에 그럴싸하게 만들어내고 싶은 응답을 생각하느라 진을 빼며, 그러다 보면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지 그 누구도 아닌지 경계선마저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늘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그 상황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어필하고 싶어져 가식을 만들어 내고 자신이 지닌 지식을 어떻게든 총동원하려 애쓰며 자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그의 책 ‘동물원에 가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놓여 공감을 했었다. 이번 책 역시 상대방의 이름조차 헷갈려 할 정도로 자신에게만 몰두한 ‘나’의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나 보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예로 비유되어,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늘 그의 책은 다소 어려움을 준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는 너무도 평범한 진실이 숨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그의 책이 매력 있게 다가온 지도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이야기 역시 작가의 모습이 녹아든 것이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서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을 너무도 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지만, 함께하기 이전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이 얼마나 더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마음만을 추스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더불어 그 속에서 내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었고, 때문에 많은 생각과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자칫 서로 유기성을 지닌 듯 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때문에 간혹 기억이 엉켜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모로 언제나 새로운 신선함과 많은 부분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늘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문장 일본어 말하기 중독 훈련 - 한국인이 일본어 회화를 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한우영 지음, 도이미호 감수 / 사람in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 통문장 훈련법이란?
일본인과의 실전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 단계로서, 단답형 문장이나 개별 표현이 아닌 ‘주제별 이야기’와 이를 구성하는 ‘문장 전체’를 통째로 외우는 훈련법

-일본어, ‘눈’이 아닌 ‘귀’와 ‘입’으로 외워라!
-일본어 문장 1만 개를 외워라!
-개별 문장이 아닌, 이야기를 통째로 외워라! 
 


사실 나는 대학교를 다닐 당시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다. 지금에 와서야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대로 나름 뭉툭한 듯한 어감과 색다름 때문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 관심을 갖던 것이 일본어였다. 과 친구의 룸메이트가 일본어를 전공하는 친구였는데, 우연찮게 찾아간 집에서 나 역시 흔히 즐겨보던 일본 만화를 자막 없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것도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면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국 만화를 틀어놓은 듯이 그 친구의 귀에는 쏙쏙 이해가 됐던 것이다. 늘 미국 드라마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마치 한국 프로그램인 듯 자연스럽게 틀어놓으며 자막 없이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자막 없이는 이해조차 못할 때면 끝도 없는 무력감에 빠지면서도, 늘 외국어 공부는 게을리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이 ‘통문장 일본어 말하기 중독 훈련’을 보니 무언가 재미나게 일본어를 공부하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 위에서 말하듯 ‘귀’와 ‘입’으로 말하고, 문장 1만개를 외우며, 이야기를 통째로 외우라는 것이다! 자칫 간단해 보이지만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외우는 데에만 지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헌데 페이지를 넘기니 그 구성이 참으로 재미있다. 각 날마다 ‘다이어트’, ‘해외여행’, ‘크리스마스’, ‘휴대전화’ 등 30개의 콘텐츠가 정해져 있다. 각 상황에 가벼운 몸 풀기로 단어를 체크하고 문장을 살펴본다. 이어 표현과 활용방법을 배우고 책에 첨부되어 있는 CD를 통해 듣기까지 가능하다. 자못 흥미로웠던 것이 바로 30개의 다양한 콘텐츠였다. 그 주제들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내용 역시 그 응용과 활용방법들이 많을 것 같아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공부를, 다양한 색채감과 재미난 주제로 어렵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한번 쭉 둘러본 바로는 일본어 공부가 재미있고 흥미로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시작단계를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간다면 앞으로의 방향도 더 없이 좋아지리라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계획을 세워 당장이라도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본어 정복을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