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들렀다가 알랭 드 보통의 작품 중 우연찮게 발견한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이곳저곳 묻은 채 짙게 변한 종이와 낡은 책장이 너덜해진 책. 그때까지만 해도 알랭 드 보통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고, 그렇게 우연찮게 집어 들게 된 책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심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는 자칫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아리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읽어내려 갈수록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고, 나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사랑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인 부분을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탄성을 자아냈다. 이번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역시 그랬다. 기존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우리는 사랑일까’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감정적인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면 이 ‘너를 사랑한다는 건’ 오로지 ‘나’의 입장에서 ‘그녀’를 서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더욱이 전 여자 친구에게서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 당신을 파악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결별선언을 받게 되면서 새로운 여자 친구에 대해 ‘전기’를 쓰는 일로 시작한다. 그 전개방식이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신선해 구미를 당겼다. 이 책의 새로운 점은 이 ‘전기’마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에서 해석되어지고 진행되어 간다는 점이다. 온전히 ‘나’의 시선을 통해 유추된다. 더욱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평범한 여자의 ‘전기’를 쓰는 일 역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보통 이성 간의 만남 사이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나’를 생각한다. 남에게 비춰질 내 모습. 그리고 그의 물음에 그럴싸하게 만들어내고 싶은 응답을 생각하느라 진을 빼며, 그러다 보면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지 그 누구도 아닌지 경계선마저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늘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그 상황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어필하고 싶어져 가식을 만들어 내고 자신이 지닌 지식을 어떻게든 총동원하려 애쓰며 자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그의 책 ‘동물원에 가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놓여 공감을 했었다. 이번 책 역시 상대방의 이름조차 헷갈려 할 정도로 자신에게만 몰두한 ‘나’의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나 보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예로 비유되어,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늘 그의 책은 다소 어려움을 준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는 너무도 평범한 진실이 숨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그의 책이 매력 있게 다가온 지도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이야기 역시 작가의 모습이 녹아든 것이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서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을 너무도 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지만, 함께하기 이전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이 얼마나 더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마음만을 추스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더불어 그 속에서 내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었고, 때문에 많은 생각과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자칫 서로 유기성을 지닌 듯 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때문에 간혹 기억이 엉켜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모로 언제나 새로운 신선함과 많은 부분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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