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 더 깊고 강한,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마음의 당부
김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삶이 지치고 힘들어, 지나가는 누군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컥 감정이 치미는 날들이 있다. 온몸은 힘이 없어 축 늘어져 지치는데, 신경질은 왜 이리도 나는지 모든 것들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몸과 마음도 지치는데, 여기에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세상 모든 좌절감과 외로움, 아픔을 다 짊어진 것만 같다. 이 힘든 시기가 계속해서 이어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이런 때를 겪는다. 좋을 일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안 좋은 일은 연이어 발생해 힘들기만 한 때 말이다.
그런 때에는 누구에게나 휴식과 위로가 필요하다. 지금의 이 아픔이 곧 지나갈 것이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주는 따뜻함 같은 것들. 굳이 화려한 말로 꾸미거나 거짓된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그저 아무런 말없이 지어주는 미소와 덤덤하지만 진실된 한마디면 충분한 것들. 바로 이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김미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꽤 덤덤하지만 콕콕 마음을 찌르고, 소소하지만 아름다워서 감격스럽다.
나를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 저녁을 먹으라고 우리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는 아픈 어깨에 붙여진 파스처럼 시큰하다. …출석부를 들고 이름을 부르시던 담임선생님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외롭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내야 한다.
(28-29쪽, 이름을 부른다는 것)
환절기의 일교차만큼 인생에도 일교차가 큰 시기가 있다. 새벽의 추위를 예상하지 못하고 교만했던 날도, 한낮의 더위를 예상하지 못하고 잔뜩 움츠렸던 날도 있다.
추운 새벽을 위해 외투를 준비하듯 겸손함을 준비할 것.
따뜻한 한낮을 위해 언제든 벗을 수 있는 홀가분함을 준비할 것.
영원히 따뜻한 봄날이 계속될 것이라는 교만함을 버릴 것.
영원히 이렇게 힘겨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역시 버릴 것.
(23쪽, 일교차가 큰 날)
부모님, 친구들,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글귀는 주저앉아 있던 두 다리에 힘을 실리게 하고, 환절기의 일교차만큼 큰 인생의 일교차도 언젠가는 봄날이 올테니 두려움을 버리라고 다독이는 말에서 설움을 씻게 된다. 지금의 이 장마도 언젠가는 끝나고, 빳빳하게 마르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 잠들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는 일, 삶이란 그렇게 누군가에게 빌려오거나, 빌려주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글귀가 바로 이 책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어깨를 빌려본 적은 없지만, 빌려준 적은 있다. 꽤 오래 전,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바깥 풍경을 보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때 한쪽 어깨로 묵직함이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여성의 머리가 어깨에 툭 안착해 있었다. 몇 번 자세를 고쳐 주었지만,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귀찮음 반으로 그냥 두었다. 결국 목적지에 가까워져서야 정신을 차린 여자는 자신의 머리가 내 어깨 위에 기대 있었던 것을 알고 당황해하더니 급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스치듯 지날 사람이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많은 것들을 빌려주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제껏 자각하지 못했던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주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삶, 그래서 더욱 힘을 내게 되는 삶,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화창한 봄날을 조금만 기다려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눅눅하고 습한 장마가 곧 끝날 테니 말이다.
삶이 장마 같을 때가 있다. 한랭전선과 온난전선 사이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비를 흠뻑 맞고 있는 것 같은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언젠가는 장마가 끝나듯 언젠가는 이 쓸쓸한 시기도 끝날 것이다.
그렇다. 장마가 끝나면 삶의 기류는 어느 쪽으로든 움직이며 흠뻑 젖은 그의 인생을 말릴 것이다. 음이온 팡팡 나오는 따뜻한 드라이어 바람이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듯이.
(125쪽, 삶이 장마 같을 때가 있다)
삶은 첫사랑과 같다. 예행연습 같은 것도 없고, 결코 면역이 생기지도 않는 것, 타인의 경험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으며, 지독한 장기투숙객처럼 내 삶을 떠나지 않는 첫사랑 같다. (305쪽, 삶은 첫사랑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