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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비잔티움 연대기 1~3 세트 (반양장) - 전3권 ㅣ 비잔티움 연대기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황금의 가지로 하여금 비잔티움의 귀족과 귀부인들을 위해 노래하게 하리라...”
연대기는 마치 일리아드의 첫 구절을 연상시키는 예이츠의 시-비잔티움을 항해하며-를 인용하면서 긴 항해를 시작한다. 몇 년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로마의 역사가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바 있다(물론 작가의 역사관에 관하여는 다소의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매년 1권씩 15년에 걸쳐서 출간된 ‘로마인 이야기’는 2007년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로마인 이야기’는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실질적인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하여 이야기를 마무리 진 셈인데, 비잔티움 연대기는 그 후 1,000년 가까이 계속된 동로마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셈이다.
위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단 몇 페이지 분량의 서술로 ‘때우는’ 동로마제국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내분을 종식시키고 330년 5월 11일, 지금의 이스탄불을 새로운 로마(얼마 지나지 않아, 콘스탄티누스의 도시-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리게 된다)로 선포한 후로부터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함락될 때까지 1,000년 간 계속된 제국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옛 로마제국의 전통을 계승한 영광의 역사임과 동시에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어두운 역사이기도 하다.
몇 번이고 급격한 몰락의 조짐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위대한 황제가 나타나 제국을 부활시킨 행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더 이상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주피터를 섬기지도 아니하였다. 그 자리를 희랍어와 기독교가 대신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사람들은 고대의 지혜를 계승하여 이를 서유럽에 전해 줌으로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저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공교롭게도 첫 황제와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같다-까지 모든 황제의 연대기를 꼼꼼하게, 그러나 기지가 넘치는 문체로 적어나간다.
저자의 재치 넘치는 입담 덕분에 3권의 두꺼운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위 책의 미덕이기도 한데, 매춘부에서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테오도라, 대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끊임없이 시기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법학도들에게는 로마법대전의 편찬으로 유명하다), 신체가 훼손된 자는 황제가 될 수 없다는 전통을 깨고 2차례나 황제의 지위에 오른 유스티니아누스 2세[그 이후부터는 황제 자리를 위협하는 자의 코를 잘라내는 ‘혐오스러운’ 풍습이 사라지고, 덜 혐오스러운(?) 사형이 이를 대신하였다고 한다], 국가 분열의 주된 요인이었던 기독교 교리 논쟁, 베네치아의 농간으로 오히려 같은 기독교국인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가 함락당한 제4차 십자군 전쟁에 관한 서술이 특히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대기의 백미는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제국의 종말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1453년 5월, 비잔티움은 1만명의 인원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 지휘 하의 10만 대군을 맞아 장렬하게 싸웠으나 끝내 함락당하고 만다.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패배를 직감하고 적진으로 몸을 던진다. 이후 그의 모습은 역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패배자의 운명이 늘 그러하듯 3일간 계속된 약탈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집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고 여자들은 능욕당하였으며 아이들은 꼬챙이에 찔려 죽었다.
소피아 대성당의 사제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사를 집전하던 중 주제단에서 살해당했다. 민간에서는, 실은 사제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대성당의 남쪽 벽을 통해 잠시 사라진 것에 불과하며 콘스탄티노플이 다시 기독교의 도시가 될 때 나타나 중단되었던 미사를 재개하리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그러나, 이스탄불은 오늘날 여전히 이슬람교의 도시이다).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날로부터 500년이 넘게 흐른 오늘, 그날을 기억하는 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비규환의 그날, 울부짖었을 비잔티움의 시민들도, 환희에 차서 도시를 약탈하였을 투르크의 용사들도 모두 티끌로 사라진지 오래이다. 오직 마지막 그 순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황제의 궁전에는 거미줄만 무성하고,
아프라시아브의 탑에는 부엉이만 우는구나.1)
로마인 이야기 이후, 로마 제국의 나머지 반쪽의 운명을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