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진 연구 - 일제 강점하 조소예술과 문예운동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총서
윤범모 지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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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불끈 쥔 1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소년상...... 단지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존재하는 이 이미지가 주는 인상은 참 복합적이다. 소년은 행복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비참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앞으로 무언가 질머져야할 숙명같은 게 느껴진다. 군살없이 잘 단련되어 보이는 몸 때문인지, 그의 숙명이 안쓰럽지는 않다.  

소년의 왼쪽 편에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있는 '김복진'이라는 이름 석 자. 그리고 그 이름의 무게를 한층 더해주는 연구라는 단어. 책의 표지는 참 투박하고 소박하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오래된 옛날사진을 들여다보듯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책장을 넘기면 이미 사라져버린 듯 했던 무언가를 불현듯 새롭게 만날 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추스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잡는다. 묵직하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2010년 여름, 나는 김복진을 그렇게 묵직한 책으로 만났다.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가 남긴 삶의 여적과 예술작품은 책의 무게로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파편적으로 기억될 뿐,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김복진이 카프의 실질적인 주도자였음을 밝힌다. 그의 동생 김팔봉이 한국현대문학사의 서장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비해 조소작가이자 문예운동가였던 김복진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 20대 후반에 사회주의 사상운동가로서 조선공산당원이며,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하고 지도하다가 5년여의 옥고를 치루었던 행적이 상대적으로 문예운동가로서 그의 역할을 평가하는데 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부록으로 재판과정의 신문조서가 실려있는데 당시 좌파민족주의 항일투쟁의 생생한 사료로서 가치가 있어 보인다. 

후기의 시작부분에서 그를 역사의 기억 저편에서 되살려 복원해낸 저자 윤범모 선생의 공력을 느낀다. "정관 김복진이라는 이름, 필자의 인생 반쯤은 그 이름에 눌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것 같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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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대통령 - 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한걸음더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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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천년 뒤쯤에 내가 살던 시대가 어떻게 기록되어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내 마음속 대통령-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1>은 불과 4개월을 갓 지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 아주 충격적이며 비극적이었던 그의 죽음을 둘러싼 배경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추모의 현상을 그렇게 짧은 기간에 객관화시켜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비장한 각오와 결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 속에 드문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주 희유한 책이다.  

"21세기 초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아주 깡촌이었던 자신의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남는 것들은 어떤 시점과 이름들, 그리고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깔린 울림의 맥락이 무엇인지에 따라 역사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이야기에 있다. 내가 직접 겪으며 지나왔던 사건의 한복판을 '사실대로' 인식하고 기록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한 사람의 기억은 의외로 쉽게 왜곡되고 각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대의 언론이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고, '추측을 사실처럼, 사실을 추측처럼' 기록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내 마음속 대통령>은 사실 기록에 충실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 실마리는 이 책의 지은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재단 기록위원회' 명단에 들어가 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부록 말미인 329쪽에 그들의 닉네임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역사기록의 에너지 원천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바로 참여와 공유의 정신이다. 노무현이 퇴임 후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시민이 참여하는 새 세상의 가능성을 이 책은 그의 서거를 기록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 노무현은 죽음으로 새 세상을 열었다.  

천년 뒤에 노무현이 연 새 세상은 대한민국의, 21세기의 위대한 역사로서 남을 것이다.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희유한 책이다. 길이 보존하고 전수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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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탄생 - 퇴계 이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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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재미로 읽는 글이 아니어도 성실함에 감탄하는 글이 있다.

애써 현학적이지도 않고 화려한 수사도 별로 없어서 담백하게 읽었다.

조선을 이끈 두 가지 힘 - 왕권과 신권, 권력이 생기는 바탕에
그 시대 지식인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지배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이 책은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그 사람들'의 글과 삶을 비추면서
알아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착하다.

지나치게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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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 붓다와 금강경
신용산 지음 / 한걸음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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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의 <금강경강의>나 월운스님의 <금강경>을 보면서 오래된 경전공부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공부가 짧은 한계로 인해 넘지못하는 벽이 있었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부처님은 현재 생애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업과 그 과보를 말했을 뿐 윤회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에 필이 왔다.

모처럼 시원하게 읽히는 <금강경>을 만났다.

김용옥 <금강경강해>를 보면서 느낀 현학의 과잉과
우승택 <금강경-심상사성>의 가벼움을 모두 넘어선 수작이다.

이 책은
한 30년쯤 브랜딩된 코냑의 향기와 여운에 비견할만한
잘 숙성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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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죽이다 - 명성황후 살해 기록과 역사의 진실
혜문 엮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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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009년에는 국민장과 국장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렀다. 두 분의 서거는 가히 역사적인 죽음이라고 할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가 우리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모든 죽음이 역사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대개의 역사 서술에는 ‘아무개가 죽었다’는 죽음의 기록이 말미를 장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이 거대한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조선의 왕후가 일본 자객의 칼에 살해되었다.’ 

  이 서술은 그 말의 울림이 남다르다. 백범 김구가 일본군 장교를 때려죽이고 독립운동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도 이 말 때문이었고, 1909년 러시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국모를 죽인 죄’를 첫째 이유로 들어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도 이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9년에 한국의 젊은 승려 혜문 스님이 일본의 심장부인 천황궁을 향하여 1922년에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오대산 사고(史庫)에서 도적질해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말 때문이다. 백년도 더 지난 한 여인의 죽음이 왜 아직까지도 살풀이를 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가?

  이 책 『조선을 죽이다』는 그 해답을 찾고자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치욕스런 죽음의 기록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 조선 왕비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로 추서된 명성황후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를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일본의 을미사변 관련 기록들을 다루고 있다. 명성황후를 살해하는데 직접 가담했던 고바야카와 히데오가 1910년에 쓴 회고록 <민후조락사건(閔后殂落事件)>을 완역해서 책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그 원문이 확인되지 않아 진위논쟁까지 나돌았던 ‘조선왕비 능욕설’의 근거문서인 <에이조 문서>를 발굴해서 메이지시대 문서에 능통한 역사학자의 번역문을 실었고, 그 문서가 포함된 《조선왕비사건 관계자료》사본을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해서 전문을 영인하여 수록하고 있다. 

  <민후조락사건>은 등사판으로 된 원서의 첫 장에 ‘문외불출지서(門外不出之書)-문밖을 나가면 안 되는 책’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일본 내에서도 사건 관계자들끼리만 대외비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엮은이는 말하고 있다.  

  고바야카와의 글은 결코 이성의 힘으로는 끝까지 읽을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굴욕 때문에 중간에 책장을 덮고도 한참동안 울분을 삭혀야 한다. 또한 이 글을 느슨하게 읽다보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해서 민비를 죽이고 조선을 병합했다는 그의 소신 있는 주장과 현란한 논리, 그리고 격조마저 느껴지는 문장에 자칫 휘말려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한다. 이 글은 현재까지도 기세등등한 이웃나라 일본 우익들의 머릿속에 과대망상으로 각인되어 있는 ‘조선을 죽인’ 생각의 뿌리를 읽을 수 있는 반면교사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들이 친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해석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을미사변에 대해서 “일본인 낭인들이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급습해서 민비를 ‘시해’했다”고 회자된다. 이 책은 이러한 느슨한 통념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하가 왕을 죽인다는 뜻의 ‘시해(弑害)’와 떠돌이 ‘낭인(浪人)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교묘하게 역사를 왜곡하는 고도의 술책으로 형성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계, 출판계, 언론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은 그들이 매수한 조선인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명성황후 살해 진범은 조선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자신이 왕후 살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고 하는 이주회라는 인물은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에서 비밀결사로 조직한 극우단체인 흑룡회 멤버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일본인들에 의해 열사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를 방문해서, 그곳에서 보관하고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다(一瞬電光刺老狐)’란 구절이 새겨져 있는 칼과 그 칼의 기증 내역이 적힌 문서를 열람하고 사진촬영까지 해서 공개한 내용은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최근 그 칼의 기증자인 도오 가츠아키의 후손이 내한하여 홍릉을 참배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일본 아사이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민후조락사건>에서는 ‘표면상으로는 진범이 조선인으로 밝혀져 자신들이 무죄방면되었다’는 등 교묘한 역사왜곡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 낭인들’이 일본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기술하고 있다. 사실 칼을 들고 직접 살해에 가담한 고바야카와는 당시 조선말 경성에서 일본인들이 설립해서 직접 운영한 한성신보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일본으로 돌아가서 후에 히로시마에서 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던 일본의 최고 지식인이다. 그와 함께 살해에 가담했던 48명의 일본인 대다수도 다선 국회의원, 외교관을 역임하는 등 ‘낭인’이 아니라 일본 최고위층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소신으로 그들의 조국을 위해서 펜만이 아니라 칼까지 직접 들고 타국의 왕비 살해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발굴과 그것에 대한 성실한 분석, 그리고 을미사변에 대한 학계의 많지 않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상당부분 사실의 접근과 진실의 확인에 다가서 있는 것은 이 책의 놀라운 미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가치는 ‘과거의 기록’을 소개하고 밝히는 것보다도 발로 뛰며 그 기록을 찾아서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하는 ‘현재의 기록’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찾기 위한 만행(萬行)의 길’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엮은이 혜문 스님이 해외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에 뛰어들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무협지 한 편을 읽는 듯 경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불교계가 결코 친일의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근대사의 그늘을 이제야 벗어나고 있다는 해방감일지도 모르겠다. 명성황후의 죽음, 그리고 역사상 가장 길고 슬펐던 조선왕비의 장례식이 치러진지 백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조선의 죽음’이 해원(解寃)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역사의 기록은 늘 진실만을 담지 않는다. 기록자에 의해 각색되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젊은 학승의 지적 탐구의 결과이다. 또한 ‘국모를 죽인 자’들의 고향과 무덤을 누비면서 그들이 남긴 유품과 기록을 찾아 이국의 곳곳을 만행(萬行)한 ‘눈 푸른 납자(衲子)’의 비장한 수행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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