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서울시향 / 2010.02.25. 

- MB취임 2주년의 아주 절묘한 선곡
 


  게으른 탓에 서울시향 연주회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전정보도 확인하지 않은 채 혜문스님과 간단한 저녁공양을 하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로 들어갔다.  

  첫 레퍼토리(R 스트라우스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처음 듣는 곡이라 다소 생소한 느낌과 약간의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두 번째 곡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2번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단지 1악장 후반부의 첼로 독주는 상당히 현란한 기교의 고난도 때문인지 연주자가 완전히 몰입된 경지가 아닌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감상이 아닌 관전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최고의 고전 반열에 오른 첼로협주곡을 무난히 소화해내는 서울시향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지휘자 스테판 에드버리의 리드가 돋보였다.

  휴식시간에 이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3부의 연주곡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잠시 전율이 스쳐갔다.

  쇼스타코비치!

  나에게 그 이름은 뭉뚱그려진 잿빛과 4박자의 반복적 열정이 어우러졌던 8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몇 개의 코드 중 하나였다.  

  몇 단계의 복제를 거친 카세트테이프로 <혁명>이라는 표제가 붙은 교향곡 5번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친구의 자취방에서 모노톤의 카세트로 암울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이 시종일관했던, 그러나 뭔가 거부할 수 없는 의무감을 가지고 들어야했던 그 시절의 단편적 기억이 선명하면서도 아리다.

  <레닌그라드>를 처음 들은 때는 87년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두 달 월급쯤 되는 스테레오 오디오를 할부로 장만하고 틈나는 대로 오리지널LP판을 한두 장씩 사들이는 쏠쏠한 재미에 빠져들던 때였다. 나름으로 사치 중에는 귀의 사치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고상한 자기합리화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특히 금지곡판을 찾아서 비싼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던 얼치기 매니아에게 광화문의 한 중고레코드점 주인이 넌지시 챙겨준 판이었다.

  당시 나에게 <레닌그라드>는 지난한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이 고난의 시기를 지나서 세계대전의 승리를 예고하며 세계 각국의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곡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들은 건 김남주 시인이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90년대 중반 어느 늦은 밤이었다. 김남주의 시어들이 서걱서걱 맴도는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서 레코드판들을 뒤지다가 선곡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감동적으로 교감되던 C장조의 4박자가 이 날엔 마치 심야에 방송이 끝났음을 알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혹감은 당시 내 실존의 의식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었다. 젊은 날을 휘어잡았던 전복의 열정은 이미 나에게서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도, 레닌도, 혁명도 함께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희미한 옛 사랑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커피 한잔을 다 마시지 못한 채로 나는 십수년이 지나서 그렇게 약간의 당혹감을 가지고 쇼스타코비치를 다시 만났다.  

  약간 빠른 4박자의 장중한 하모니가 흘러간 뒤에 드럼의 4박자 소리가 작게 이어지며 “타∼라라 라라” 볼레로 풍의 메인멜로디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엇박자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플륫과 오보에, 바순이 수줍게 때로는 작심한 듯이 호응하면서 금관악기와 타악기, 현악기들이 차례대로 합세하며 일방향의 행진곡이 점점 심장박동을 크게 울려갔다. 대반주 오케스트라의 힘에 나도 모르게 발 박자를 맞추며 나는 광장의 군무 속으로 휩싸여갔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마치 옛사랑을 해후한 것처럼 오랜만에 4박자의 감동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그러나 1악장 알레그레토는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반복적인 흐름이 서너 번 계속되면서 감흥이 점차 식어갔다.

  문득 혜문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명박 취임 2주년에 대해 나누던 얘기들이 떠오르면서 왜 하필 오늘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를 연주하는 것인가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가 막혔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과거의 주관적 경험과 각인된 단편적 기억들이 이리저리 맴돌다가 어느 순간에 퍼즐처럼 짜 맞추어 지기도 하는 것처럼 처음 결합된 편린들은 나름의 정합성을 추구해간다.  

  과거의 기억은 각색되어지고 현재의 생각은 실존의식에 복무한다. 그래서 나는 기획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2010년에 대한민국에서 1941년의 쇼스타코비치가 MB의 프로파겐더로 부활하여 농락되고 있다는 생각을 연주회 내내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뒷풀이 시간에 후배의 한 마디가 통쾌한 반전이 되어 잠시의 당혹감과 편향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드럼소리가 MB 깡통을 두드리는 것 같지 않았냐는 그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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