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죽이다 - 명성황후 살해 기록과 역사의 진실
혜문 엮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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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009년에는 국민장과 국장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렀다. 두 분의 서거는 가히 역사적인 죽음이라고 할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가 우리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모든 죽음이 역사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대개의 역사 서술에는 ‘아무개가 죽었다’는 죽음의 기록이 말미를 장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이 거대한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조선의 왕후가 일본 자객의 칼에 살해되었다.’ 

  이 서술은 그 말의 울림이 남다르다. 백범 김구가 일본군 장교를 때려죽이고 독립운동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도 이 말 때문이었고, 1909년 러시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국모를 죽인 죄’를 첫째 이유로 들어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도 이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9년에 한국의 젊은 승려 혜문 스님이 일본의 심장부인 천황궁을 향하여 1922년에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오대산 사고(史庫)에서 도적질해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말 때문이다. 백년도 더 지난 한 여인의 죽음이 왜 아직까지도 살풀이를 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가?

  이 책 『조선을 죽이다』는 그 해답을 찾고자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치욕스런 죽음의 기록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 조선 왕비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로 추서된 명성황후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를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일본의 을미사변 관련 기록들을 다루고 있다. 명성황후를 살해하는데 직접 가담했던 고바야카와 히데오가 1910년에 쓴 회고록 <민후조락사건(閔后殂落事件)>을 완역해서 책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그 원문이 확인되지 않아 진위논쟁까지 나돌았던 ‘조선왕비 능욕설’의 근거문서인 <에이조 문서>를 발굴해서 메이지시대 문서에 능통한 역사학자의 번역문을 실었고, 그 문서가 포함된 《조선왕비사건 관계자료》사본을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해서 전문을 영인하여 수록하고 있다. 

  <민후조락사건>은 등사판으로 된 원서의 첫 장에 ‘문외불출지서(門外不出之書)-문밖을 나가면 안 되는 책’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일본 내에서도 사건 관계자들끼리만 대외비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엮은이는 말하고 있다.  

  고바야카와의 글은 결코 이성의 힘으로는 끝까지 읽을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굴욕 때문에 중간에 책장을 덮고도 한참동안 울분을 삭혀야 한다. 또한 이 글을 느슨하게 읽다보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해서 민비를 죽이고 조선을 병합했다는 그의 소신 있는 주장과 현란한 논리, 그리고 격조마저 느껴지는 문장에 자칫 휘말려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한다. 이 글은 현재까지도 기세등등한 이웃나라 일본 우익들의 머릿속에 과대망상으로 각인되어 있는 ‘조선을 죽인’ 생각의 뿌리를 읽을 수 있는 반면교사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들이 친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해석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을미사변에 대해서 “일본인 낭인들이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급습해서 민비를 ‘시해’했다”고 회자된다. 이 책은 이러한 느슨한 통념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하가 왕을 죽인다는 뜻의 ‘시해(弑害)’와 떠돌이 ‘낭인(浪人)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교묘하게 역사를 왜곡하는 고도의 술책으로 형성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계, 출판계, 언론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은 그들이 매수한 조선인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명성황후 살해 진범은 조선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자신이 왕후 살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고 하는 이주회라는 인물은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에서 비밀결사로 조직한 극우단체인 흑룡회 멤버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일본인들에 의해 열사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를 방문해서, 그곳에서 보관하고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다(一瞬電光刺老狐)’란 구절이 새겨져 있는 칼과 그 칼의 기증 내역이 적힌 문서를 열람하고 사진촬영까지 해서 공개한 내용은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최근 그 칼의 기증자인 도오 가츠아키의 후손이 내한하여 홍릉을 참배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일본 아사이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민후조락사건>에서는 ‘표면상으로는 진범이 조선인으로 밝혀져 자신들이 무죄방면되었다’는 등 교묘한 역사왜곡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 낭인들’이 일본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기술하고 있다. 사실 칼을 들고 직접 살해에 가담한 고바야카와는 당시 조선말 경성에서 일본인들이 설립해서 직접 운영한 한성신보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일본으로 돌아가서 후에 히로시마에서 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던 일본의 최고 지식인이다. 그와 함께 살해에 가담했던 48명의 일본인 대다수도 다선 국회의원, 외교관을 역임하는 등 ‘낭인’이 아니라 일본 최고위층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소신으로 그들의 조국을 위해서 펜만이 아니라 칼까지 직접 들고 타국의 왕비 살해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발굴과 그것에 대한 성실한 분석, 그리고 을미사변에 대한 학계의 많지 않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상당부분 사실의 접근과 진실의 확인에 다가서 있는 것은 이 책의 놀라운 미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가치는 ‘과거의 기록’을 소개하고 밝히는 것보다도 발로 뛰며 그 기록을 찾아서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하는 ‘현재의 기록’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찾기 위한 만행(萬行)의 길’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엮은이 혜문 스님이 해외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에 뛰어들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무협지 한 편을 읽는 듯 경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불교계가 결코 친일의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근대사의 그늘을 이제야 벗어나고 있다는 해방감일지도 모르겠다. 명성황후의 죽음, 그리고 역사상 가장 길고 슬펐던 조선왕비의 장례식이 치러진지 백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조선의 죽음’이 해원(解寃)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역사의 기록은 늘 진실만을 담지 않는다. 기록자에 의해 각색되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젊은 학승의 지적 탐구의 결과이다. 또한 ‘국모를 죽인 자’들의 고향과 무덤을 누비면서 그들이 남긴 유품과 기록을 찾아 이국의 곳곳을 만행(萬行)한 ‘눈 푸른 납자(衲子)’의 비장한 수행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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