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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평점 :
고병권 - 언더그라운드 니체
니체를 중학교때 처음 읽고 무시해 왔습니다. ㅠㅠ 순전히 번역의 문제라 생각하기에 너무 배움이 없던 시절이라 베베꼰 말투로 도대체 무슨 철학을 한다는 말인가 개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번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하고도 매 순간 그가 떠오르고 누군가 그를 떠올려줄 때면 꼭 한번씩은 다시 책을 들쳐보고 그의 말투에 실망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했었지요. 그렇게 니체는 내 마음의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작년 철학박사 강신주 선생의 강연과 책, 그리고 다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선생님의 강연을 보고 니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쉽게도 니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번역서의 오류도 내가 그를 이해 못하는 데 한몫 거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과 제 인문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요 2년 인문학 공부를 천천히 해와서 니체 해설서를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된 책입니다. ^^ 책은 얇고 가벼워 들고 읽기에 딱 좋았습니다.
이제까지 니체를 읽을 때면 몽글몽글 생겨나던 관념적인 방어막들... 그것이 생기지 않는 쉽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정도로 니체를 이해할 수 있구나 나 자신에게 감탄하지만 기실 작가의 능력이죠. ^^ 마치 일본의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추구하는 간결한 정제의 미, 미니멈하면서도 간결한 정돈이 보입니다. 어려운 주제에 대해선 오히려 그런 틀과 방식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 같습니다.
여러 강연을 들으며 니체에 대해 쉽고 좋은 말들을 많이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 ^^; 이 책은 간결하고 쉽고 명확하게 니체의 간결하지만 복잡한 언어를 해석해주고 있어 강연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생각이 직접적으로 생겨 좋았습니다. 니체의 애초 글을 쓴 의도까지 재풀이하려는 노력에 혀가 내둘러집니다. 어쩜 이렇게도 니체가 되려 그의 글에 빠져들 수 있나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빠져드는 것도 그 어려운 언어에 쉽게 할 수 없지만 더 어려운 건 그걸 재해석해 쉽게 설명하는 일. 책이 가볍고 얇지만 저자의 언어는 압축됨과 동시에 간결해 빠른 그의 사고속도가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속도감있고 재미있었습니다.
저자의 니체 해석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틀이 너무 좋습니다. 매 주제마다 짧게 글을 장으로 나누었고 그 안에서도 주제들을 큰 글씨로 써 분류해 읽기에 좋았습니다. 아무리 쉽다지만 니체와 철학이니만큼 내 생각과 비교하고 기존 고정 관념들과 비교해 생각하는 되새김질이 필요한, 정독만이 가능한 책이지요. 그래서 저자의 간결하고 짧은 언어가 매력적입니다.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많은 철학책들이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관념들을 멋지게 풀어내느라 주절주절 말이 많지만 독자에게 생각할 여유와 공백도 주지 않고 떠들어대 독자들의 뇌를 마비시킵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여유가 있는 북디자인과 글임에도 글 안의 속도감이 팽배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치의 근거부터 파헤치는 니체의 철학, 현실을 기본부터 뒤엎은 재해석은 속을 시원하게도 해주고 아리송하게 헤매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해석한 겪고 겪은 걸 해석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제일 처음 제게 각인되는 쉬우면서 기본을 뒤집어 엎는 말입니다. 니체는 자신과 자신이 쓴 책을 느린 가락의 친구들이라 칭합니다. 그만큼 천천히 말하고 이해시키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급하게 하는 일은 뭔가 잘못되기 마련이며 천천히 기본부터 착실히 해나가야 된다는 철학을 전해줍니다. 니체도 이렇게 저렇게 해석의 방법만 달리하면 쉽다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 흐뭇~ 이런 니체의 정신처럼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는 것을 문체에서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3장 자아편에선 자아를 그리기 위해 다양한 관념과 경험을 분석합니다. 꿈, 우연, 종교와 신, 그리고 자유의지. 저는 무의식을 꿈, 신, 우연으로 그려냈다 봅니다. 밤에 꾸는 꿈은 무의식의 발현으로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우리를 만들고 관조하는 신의 영역이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지요. 읽을 수록 저자의 해설을 재해석하고 분류하는 제 모습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
하지만 제가 관심없는 종교나 도덕에 대한 부분들은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이였습니다. 그만큼 관념적인 언어가 팽배하면서도 잘 해석이 되어져 있어 인문학 초보자인 저도 관심도에 따라 읽기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습니다.
니체에 성큼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책입니다. ^^ 마냥 쉽다기엔 읽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된 책이지만 철학이니깐요. 이 정도도 고생하지 않으면 배움이 없을 거 같아요. 니체 철학의 기본을 알려주어 니체 입문서로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