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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벽이 있다면? ㅣ 나무자람새 그림책 8
사토 신 지음, 히로세 가쓰야 그림, 엄혜숙 옮김 / 나무말미 / 2022년 4월
평점 :

커다란 벽이 있다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질문이 훅 들어온다.
커다란 벽은 어디에 있을까? 내 안에도 있고 내 밖에도 있다. 어느 때가 더 힘들까? 요즘에 글쓰기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데 한가지 주제에 침참해 들어가 몰입하는 고요 속에 머무는 것이 힘들다. 글을 쓰려 앉기도 전에 ‘글을 꼭 써야만 할까?’ 로 시작해 ‘포기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라는 악마의 유혹이 고개를 든다. 그 유혹은 어느새 커다란 벽으로 변해 시작도 하기 전에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커다란 벽이다. 내 안의 커다란 벽....
커다란 벽은 내 밖에도 있다. 어설프더라도 시작을 용기있게 해 보려는 찰나에 나에게 던져지는 냉정한 시선에서부터 작은 실수에서 벌어진 큰 사건 등 생각해 보니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은 ‘엄마 역할’ 이었다.. 모성 신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는 나에게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발버둥 치는 나의 모습은 ‘양육’ 그 자체를 커다란 벽으로 느끼게 했더랬다.
에고 그림책을 넘기기도 전에 ‘커다란 벽이 있다면?’의 대답도 없이 ‘내 인생의 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림책으로 들어가보련다. 그림책 속에 그 커다란 벽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어떤 묘책이 숨겨져있길 바란다.
표지의 고양이는 끝도 알 수 없고 그 두께도 어마 어마한 회색의 거대한 벽앞에서 경직되어 있다. 어찌할꼬? 면지의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속표지의 고양이의 모습은 표지와는 다르다. 씩씩한 걸음걸이에 힘이 솟아난다. 그러다 만난 회색의 커다란 벽,

“이를 어쩌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지?
그러다 묘책을 발견하다.

'사다리를 걸치고 넘어가면 되지.'
그런데 저 사다리 어디서 났을까? 앞 면으로 다시 넘어가면 오른쪽 숲 속에 사다리 끝이 살짝 보인다.
이렇게 고양이는 더 더 커다란 벽, 더 더 높은 벽
더더더 커다란 벽, 더더더 높은 벽....
을 계속해서 만난다.
그 벽에 맞서 고양이의 해법이 제시된다. 방법은 늘 주변에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의 해법은 내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그림책 속 고양이의 해법이 우리 삶의 모습과 똑 닮아있다. ‘그래, 그랬지~’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고양이의 여행은 계속된다. 이번엔 흙담벼락같은 주황색 더 높은 벽이다. 이번엔 장대높이뛰기다. 장대는 어디서 났을까? 다시 앞면으로 넘어가 찾게 된다.
고양이의 해법 중 가장 압권은 ‘와와와와 친구들’과 함께 일 때이다. 흰색, 검은색, 파랑색, 회색, 주황색, 얼룩 등 각자의 개성을 가진 고양이들이 모인다. 색깔이 상징하듯 모이기 시작할 때의 고양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들을 가진 개개인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여 거~~대한 벽을 무너뜨려야 할 땐 ‘하나된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함께 벽을 넘어 서고야 말겠다는 하나된 열망을 가지고 빨간색 고양이가 된다. 불협화음이란 찾을 수 없다. 촛불혁명을 비롯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민주화운동의 거룩한 움직임이 이랬을테지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그렇게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고 난 뒤 고양이들은 각자의 원래 색을 찾아 자기의 길을 나선다. 위트있는 그림으로 어머어마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림책의 큰 힘이 느껴진다.
그림책의 마지막, 이번엔 강이 막어선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양이의 커다란 벽 넘기 모험을 함께 하고 나니 ‘커다란 강’을 건너는 해법을 저절로 찾고 싶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만의 커다란 강이 있다면?’으로 후속작을 만들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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