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 파리, 그 극적인 거리에서 마주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크리스티앙 파쥬 지음, 지연리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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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빈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빈자의 발목을 잡고 벼랑 끝으로 내몰아 매장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정의다. 이따금 빈자의 편을 드는 것은 드물게 찾아오는 행운뿐이다. (p88)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누가 있겠냐만 안락한 집에서 내쫓겨 거리의 방랑자가 된 이들만큼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이들도 드물 거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 그 화려한 도시를 이루는 또 다른 구성원은 노숙인이다. 사실 노숙인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감출 수 없는 특유의 매캐한 냄새,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며 술주정이나 하는 거리의 무법자, 내일이 없는 삶.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린다. 그 누구보다도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게 노숙인의 실상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냉혹한 잣대로 평가받는 노숙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까, 3년 반 동안 파리의 노숙인으로 거리를 누빈 크리스티앙 파쥬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는 그간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조차 힘겹다는 이유로 외면해온 빈자의 처절한 외침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노숙인이지 않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더니, 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으로 직업도 있고 건강보험료를 내고 살았던 평범했던 그가 몰락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가 떠나고 일자리와 집을 잃었다. 어제는 친구였던 이웃이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돌변하고 바쁘게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당당하지 못하단 마음에 등교시간은 숨어있어야 하는 그들에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옥 같은 이 상황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보호하는 정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노숙인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포기는 우리가 사는 나라가 그만큼 노후했음을 의미한다. 시대가 바뀌며 우리는 보다 부유해졌지만, 늘어난 부만큼 결속력은 줄어들었다. 예견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색하고 배타적인, 노망난 늙은이들의 나라가 되었다. (p158)

 

노숙인이 거리에 넘친다는 건 그만큼 이 사회에 어딘가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누군가는 거리에서 외롭게 죽어 가는가? 크리스티앙 파쥬는 DAL(주거권 연합)의 투사로 활동하며 노숙인의 주거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길바닥 인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도와줄 사람을 만나거나 집을 구하는 것. 구직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부지런히 오가며 서류를 작성할 책상이 있어야 한다(p98)는 그의 진술로 미루어보아 노숙인의 자립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확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그는 거리 생활을 청산했지만 더 많은 파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지 않을까. 노숙인을 그저 내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영국의 시스템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거리의 빈자는 누구에게도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비교적 자기절제가 잘 되고 꿈이 있었던 파쥬와 달리 삶의 의욕조차 없어진 이들은 그저 사회의 골칫덩이로만 방치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여러모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렇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라 더 마음이 먹먹하다. 책을 통해 모두가 한번쯤은 노숙인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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