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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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들은 용서를 믿는다. 하지만 무엇을 용서하는 것일까? (p395).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 썼다. 예술과 거짓말,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익히 명성을 알린 지넷 윈터슨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겨울 이야기>시간의 틈이란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는 질투에 눈이 먼 왕을 다룬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티즈는 아내와 친구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의심으로 갓 태어난 제 딸조차 거부한다. 결국 아내와 딸, 아들 그리고 친구까지 잃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가족들에게 레온티즈가 용서를 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고 용서를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 ‘시간의 틈역시 이 포맷을 따른다.

 

노래의 제목은 <퍼디타 PERDITA>.

이게 아이의 이름이군. 잃어버린 작은 아이 (p39).

 

어느 날, 솁과 그의 아들 클로에게 기적처럼 온 아이 퍼디타, 작고 여린 아이는 병원의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 작은 여아가 발견된 그 장소에서 한 사내는 유명을 달리했다. 솁과 클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퍼디타는 그들의 가족이었다. 퍼디타는 백인이고 우리(솁과 클로)는 흑인이므로 퍼디타 역시 자신이 주워온 아이임을 안다(p40).

 

성공한 사업가 리오는 아내 미미와 한때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친우 지노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굳게 믿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자신의 침실에 웹캠을 설치한다. 지노가 침대에 누워있는 미미에게 물 잔을 건네는 영상만으로도 망상을 하는 리오는 질투에 눈이 멀어 막 출산한 미미에게 몹쓸 짓을 한다. 미미가 낳은 딸이 지노의 아이라 믿고는 유전자 검사도 거부한 채 그 아이를 지노가 있는 곳으로 보낸다. 그런데 지노는 그곳에 없었다. 아이의 운반을 맡긴 정원사 토니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여아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그렇게 리오와 미미도 남이 된다.

 

변명은 없다. 이유도 없다. 용서도 없다. 희망도 없다 (p325). 

  

그날의 선택은 리오에게 많은 걸 앗아 같다. 아내와 아들, 딸을 잃었고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친구와의 관계도 단절됐다. 모든 것을 그의 손으로 망쳤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광기, 그 집착, 그 질투, 이성을 잃은 그의 실책은 단란했던 가정의 평화를 빼앗고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하리.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의 인생에 우연처럼 행운이 찾아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찾을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p364).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시간의 틈도 해피엔딩이다. 잘못된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용서라는 소재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어린 것일까.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다고 믿기에, 리오의 해피엔딩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는가? 그는 과연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용서와 화합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발판을 만든 다지만 리오는 가족을 잃고도 여전히 이기적이었다. ‘퍼디타로 인해 과거의 조각을 다시 맞췄지만 과연 이들이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뼛속까지 사업가인 리오, 그의 본성은 과연 변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나이가 더 들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가 막이 올랐던 그 때, 그 시대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이 작품에 공감하며 찬사를 보냈을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를 만화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과거는 되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에게 시간을 준다면 어긋난 시간을 다시 메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뿐. 인간의 가장 간절한 욕망을 담은 작품인걸까.

 

셰익스피어와 윈터슨,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그들은 정녕 레온티즈와 리오를 용서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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