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처음 국외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교과서에 직지이야기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왜 우리의 것인데 돌려주지 않는 거지? 그때의 나는 어렸고, 문화재가 단순히 예술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상식적으로 우리의 것을, 다른 이들이 소유를 주장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김경민 박사의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는 문화재 약탈의 근원을 살펴보고 왜 문화재가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국제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 한다.

 

한때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 불렸을 만큼 약탈의 대가였던 영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문화재의 현 소유국인 시장국의 입장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주로 문화재를 약탈당한 원산국의 입장인 만큼 그들의 논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풍부한 사료와 논리적인 분석으로 왜, 유독 영국이 문화재 반환에 회의적인지 그 주장을 설파한다. 현재 파악되기로는 7,638점의 우리나라 국외문화재가 영국에 있다. 과연 그 문화재들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고대 이집트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가?

유적을 발굴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고고학자의 발굴은 어디까지가 연구이고, 어디까지가 약탈과 파괴인가?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는 박물관은 도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옳은 공간인가? (p9)

 

저자가 책의 서문에 넣은 위의 질문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궁극적으로 잘 표현했다. ‘문화재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고대 시대의 유물들을 현재 그 땅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민족과 문화가 다를지라도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유물을 발굴할 권리와 상통하는가? ‘무덤의 저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듯 무덤의 주인이 원치 않을지라도 그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덤을 발굴할 정당성이 있는가? 세계의 유수 박물관의 전시를 즐기면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재 반환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원주인이라 주장하는 원산국과 현 소유국인 시장국의 문제만으로 생각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도의적 차원을 넘어 다방면으로 고려해야하는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단순히 우리 것이기에 우리가 소유해야 한다는 차원의 사고를 넘어서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근대적인 의미의 문화재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중세시대만 할지라도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가치 있어 보이는 것들이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르네상스 시대로 옮겨오면서 예술은 곧 교양의 지표가 되었고 이때 사회, 정치적 목적으로 예술품을 모으는 것이 더 활발히 시행되었다. 이에 정점을 찍은 건 문화재 약탈을 주도한 영국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마수를 뻗치면서부터다.

 

영국의 문화재 약탈사

 

영국은 정복국의 문화재를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대영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이용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수집해 온 것이겠으나) 반출해온 문화재를 박물관에 전시하여 영국 땅을 벗어난 적 없는 일반인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제국주의의 위대함을 전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아닌 것들을 열등하게 여겼으면서도 이전 문명의 화려함은 취했다. 프랑스와 식민지 개척을 두고 벌인 자존심싸움의 연장선은 문화재였다.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원산국을 대신해 문화재를 연구하겠다며 타국에 발을 들인 학자들의 목적이 순수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강자들에게는 항상 그럴싸한 명분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제국주의적 시선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충격이었다.

 

 

티푸의 호랑이, 베닌 브로즈,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등 현재 영국의 박물관을 가득 채우는 건 대부분 영국 고유의 문화재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 다 합법적으로 절차로 취득했다기엔 영국은 언제나 강자였고 그들은 약자를 탈취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실효성이 없는 국제법의 허점과 영국박물관법을 이유로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 그들은 문화재 반환을 논의하는 국제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점이라 볼 수는 없다. 대부분 19세기를 호령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관된 모습이나, 유독 영국 정부는 그 반감이 심할 뿐이다. 또한 국제법적인 협의에 이르게 될지라도 소급적용 될 수 없는 법망을 피해 약탈의 주요 시기였던 19세기 혹은 그 이전에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문화재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 세계를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바라보는 문화국제주의와 원산국에 돌아가야 한다 바라보는 문화민족주의다. 돌려받을 것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민족주의의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타국의 문화재를 소유한 국가들은 인류 공동의 유산을 최상의 상태로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여전히 자신들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외 문화재의 미래

 

우리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우리에게도 돌려주어야 할 문화재가 있다. 총독부 박물관이 남기고 간 실크로드 컬렉션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역시 약탈 문화재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니, 받아야 할 문화재가 있는 우리의 여론은 반환에 대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일정 부분에 대해선 시장국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큰 논란은 아니리가 생각한다. 다만, 우리의 문화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단 우리의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약탈 문화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문화재 반환 문제는 공식적인 절차와 법적 소유권의 개념이 아닌 상호 이해를 통한 양보와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p335)고 말한다. 문화재야말로 주요 시장국 입장에서 그리운 제국주의의 향수이기에 그때의 영광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쩌면 냉혹한 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이것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 근간에는 결국 제국주의를 과오로 보지 않는 그들의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